모두(冒頭)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조선땅에 시외버스라는 것은 야금야금 다니기 시작하였고, 이어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고속버스의 시대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터미널을 본답시면은 사실은 시외버스가 고속도로가 개통을 하면서 고속도로 버스로 고속버스로 전환이 된 것도 있고, 도심지에 위치한 시외버스 터미널이 외곽으로 이전하는 척 하고는 사실 고속버스 터미널로 변모한 것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양자는 사실은 떼어놓을 수가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69년 12월 9일자 광고


 위 광고는 고속도로 개통에 따라 고속버스를 운행하게 된 한진관광의 광고이다. 광고에서도 보듯이 이 터-미날이 서울역 앞에 위치하여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후술하기로 한다. 여하간 1968년에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경인 구간에 한진, 삼화, 풍전이 각 10대 씩을, 경수 구간에 광주, 천일, 동양, 한남이 각 40대 씩을 인가를 받고서 고속버스...를 운행할라나 싶더니 버스가 없는 고로 각각 한진(25)-삼화(18) 43대와 경남(18)-신원(18)의 36대가 시속 50킬로미터 이상의 버스로 임시 운행을 시작함으로써 고속버스의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그 뒤로 고속도로가 죽순과 같이 건설되었고, 물론 그에 따라 인가받은 업체도 늘어남으로써 고속버스는 시외버스를 제치고서 도로교통수단의 1인자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전구간 개통에 따라 9개 회사가 경부구간에서 고속버스 인가를 받아 운행을 시작하였다. 당시의 인가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부산간 고속버스운행표서울~부산간 고속버스 운행표 (경향신문 1970년 7월 8일자)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유신고속을 비롯하여 다종다양한 고속버스 업체가 있었지만, 제각기 버스 터미날이라고 할만한 것을 돈을 내어서 세워서 운영을 하였고,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시외버스 터미널을 외곽으로 옮겨놓았더니 이것을 고속버스로 쓰는 업체도 적지 않았다. 1기 터미널 시대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의 시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팽창하는 거대 도시의 싹이던 서울에서도 도심지에 다종다양한 터미널이 난립하여 도로를 마비시키는 주범이 되었고, 또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당국의 또 다양한 대책이 나온 데에는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1969년 8월 21일자


 우선적으로 시외버스 터미널이 도심에서 외곽지역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그 외곽이란 지금의 용산이라든지 홍은동이라든지, 용두동 정도이다. 그 가운데 제일 큰 것이 3천 평 규모의 동부공동주차장, 즉 용두동 터미널이다. 용두동 터미널은 동마장터미널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홈플러스 동대문점과 동대문구청 자리이다. 기사에서 보듯이 청량리, 의정부, 춘천, 광주 및 이천을 비롯해 지금의 동서울종합터미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터미널이다. 



 위 항공사진은 74년도의 사진인데, 내가 숭인중학교라고 적은 것은 오류이다. 숭인중은 비교적 최근(?)에 이전하였으므로, 저것은 숭인중이 아닐 터이니 무엇인지 아는 독자제현의 많은 제보를 바란다. 여하간 지금은 복개된 전농천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전농천은 저 시기를 전후하여 복개가 되어,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동마장터미널 자리에는 버스가 바글바글한데, 동마장 터미널이라고 한 것은 마장동에 있다거나 하는 설도 있으나 실질적으로 굳이 따지면 저 위치는 마장동의 서쪽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므로 설득력은 없다. 다만 그 운영주체가 1972년도 11월에 면허를 취득하여 이듬해 12월에 영업을 개시한 그 간판에 동마장터미널이라고 적었으므로 다들 동마장터미널이라 부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동부공동주차장이니, 용두동터미널이니 하는 별칭들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헷갈려서 등장한 것이 아닐까.


동마장 시외버스 터미널 전경 (1970)경향신문 1969년 6월 19일자 기사


 그 중에 좌측 1970년 사진에는 주식회사 신대동이라고 나오는데, 우측 1969년 기사에서는 주차장 운영자를 태원실업이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서울시 관련 자료에서는 동마장터미널주식회사라고 하는데 무슨 일이 그간에 있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여하간 저 신대동은 훗날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이 되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대양산업에 병합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사진은 1988년과 1990년의 동마장 터미널의 모습이다. 서울의 시가 팽창에 따라 다시금 동마장터미널의 이전이 거론되어 상봉동 터미널과 구의동 터미널(현 동서울 터미널)로 분할이전하게 되었는데, 옮긴다는 소리는 거의 1970년대부터 거론되다가 1985년 상봉터미널 개업, 1989년 동서울터미널 정식개업에 이르러서야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아래는 해마다 나오던 이전설에 대한 동아일보의 기사 가운데 몇 가지를 추린 것이다.


1978년 1월 27일자1980년 3월 22일자1981년 4월 3일자



 항상 그렇듯 분량 조절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다음에는 용산 터미널에 대해 잠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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