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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개의 글이 있습니다.

  1. 2017.07.26 2017.06. 강원도
  2. 2017.07.26 2017.06. 군산 및 전주
  3. 2016.04.08 일본 선거의 자서식 투표에서의 후보자명 기입과 관련하여 (1)
  4. 2015.12.18 부부동성제도 합헌 판결 (2015.12.16. 최고재판소 대법정 판결)
  5. 2015.08.15 2015년 8월 14일 내각총리대신 담화 (2015년 아베 담화)
  6. 2015.05.25 2015.5.25. (1)
  7. 2014.07.14 모에적성검사 2011
  8. 2014.07.14 갤럭시 찬가(부제 : 돌파하라 최첨단을) (1)
  9. 2014.07.14 화투놀이 이야기
  10. 2014.07.14 응답하라 1997을 이제 보기 시작했는데....
  11. 2014.07.14 감저시설(甘藷匙說)
  12. 2014.07.14 편교자설
  13. 2014.07.14 출애굽설(출근단상)
  14. 2014.07.14 한식대첩
  15. 2014.07.14 <어머니가 생각한 평화운동>
  16. 2014.07.14 커피믹스 이야기 (1)
  17. 2014.07.14 2014.06.29. 아쿠아플라넷 일산 짤 (1)
  18. 2014.07.12 2014.06.29. 파주 임진각
  19. 2014.07.12 2014.06.29. 아쿠아플라넷 일산
  20. 2014.06.12 2014.06.08. 수리티재
  21. 2014.01.17 서울전도
  22. 2013.11.26 경찰예비대 위헌소송 최고재판소 판결 (1952.10.8.)
  23. 2013.11.17 2013.11.09. 해미읍성, 봉곡사
  24. 2013.11.07 국제연합 창설 및 우리나라의 종전·피폭 60주년을 맞아 한층 더 국제평화의 구축으로의 공헌을 서약하는 결의
  25. 2013.11.02 2013.11.01. 파주 임진각 및 JSA(판문점) 인근
  26. 2013.11.02 2013.10.23. 경복궁 및 광화문 인근
  27. 2013.10.20 2013.07.27. 대구 달성공원
  28. 2013.10.19 2013.07.25. 순천
  29. 2013.10.19 2013.07.23. 전주 카메라박물관
  30. 2013.10.15 2013.10.06. 2013 구리 코스모스축제(구리 한강시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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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선거는 한국과 같이 후보자가 기재된 투표용지에 기표용구로 기표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이름을 적는 자서식 투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일이라는 것이 다들 후보자의 이름을 제대로 적는 것은 아니고, 잘못 적기도 하고 낙서를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어떻게 처리하게 되는가.


국가 단위의 선거에서는 중앙선거관리회가, 지방 단위의 선거에서는 각 지방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사무를 담당한다. 양 쪽 모두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어 중앙선관회는 총리대신으로부터, 지방 선관위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부터 독립된 조직과 지휘계통을 가지고 있다. 각 위원은 공정한 식견을 가진 유권자 가운데에서 의회의 승인을 거쳐 임명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 전부터 나올 법한 오기誤記 등 표의 유·무효 판단에 대한 기준을 각 개표소에 통지한다. 그러나 통지된 기준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각 개표소에서 개표입회인의 의견을 참고로 하여 선거장이 유·무효를 판단한다.


만일 성씨가 같거나 이름이 같은 후보자가 2인 이상 존재할 때, 이를테면 다치하루 다이키치(立春大吉)와 다치하루 고키치(立春小吉)라는 후보가 있을 때 "다치하루立春"라고만 기재한다면 어느 쪽에 투표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유권자가 투표한 것은 확실하므로, 같은 성씨를 가진 두 후보자에게 0.5표씩 부여(안분按分)한다. 유권자는 각자 1표 씩을 1명의 후보자에게 투표함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에서 소수점 단위의 득표수가 나오는 것은 이때문이다.


[오기재]

후보자의 이름을 잘못 기재하더라도 해당 후보자의 이름을 적으려다 오자나 탈자가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면 유효표로 판단한다. 다만, 상식적으로 보아 오자의 범위를 넘어서 본래의 후보자를 가리키는지 의심스러울 때에는 무효이다. 판단이 애매한 경우 구체적으로 선거장이 각 투표입회인의 의견을 들어 판단한다.


과거 돗토리 현 지즈 정(智頭町)의 정의원 선거에서 '오카라オカラ'라고 쓴 표가 입후보자인 오카다 가즈히코(岡田和彦)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유효라고 판단하였으나, 이후 이의신청 심사를 통해 무효가 된 사례가 있다.


[별명, 통칭, 예명 등]

별명이나 통칭, 예명을 쓴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무효이다. 다만 그 별명이나 통칭이 유권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경우에는 유효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유·무효 여부는 최종적으로 각 개표소의 선거장이 판단한다.


과거 라이브도어의 전 사장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가 출마한 중의원 선거에서 '호리에몬ホリエモン'이라고 쓴 표가 유효로 판단된 사례가 있다. 또 프로골퍼인 요코미네 사쿠라(横峯さくら)의 아버지 요코미네 요시로(横峯良郎)가 참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사쿠라 파파さくらパパ'라고 쓴 표도 유효로 판단되었다.


예능인이 입후보했을 때 사전에 이름과 함께 예명을 통칭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고 승인을 얻은 경우에는 해당 통칭으로도 선거운동이나 투표가 가능하다. 전 오사카 부지사 요코야마 노크(横山ノック)나 이와테 현의원 더 그레이트 사스케(ザ・グレートサスケ) 등 본명이 아닌 이름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해당한다.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과 함께 쓸 수 있는 것은 정당명, 경칭, 주소, 직업에 한정한다. 그 밖의 사항을 기재했을 때에는 '타사기재他事記載'라고 하여 이름을 제대로 쓰더라도 모두 무효로 판단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후보자가 있을 때 각 기표내용에 따른 유·무효 여부를 살펴보자.


정당: 민주자유당

이름: 다치하루 다이키치(立春大吉/たちはるたいきち)

주소: 아와시마 (粟島県) 기치토 (吉東市) 기치토 1-2-34

직업: 소설가


立春大吉

또는 たちはるたいきち

또는 立春たいきち

또는 たちはる大吉

한자로 쓰건 히라가나로 쓰건, 또는 일부를 한자나 히라가나로 쓰건 후보자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유효하다.


立春 또는 たちはる

성만 쓰더라도 다른 후보 중에 "立春" 또는 "たちはる"라는 성을 쓰는 사람이 없다면 유효하다. 만약 동일한 성을 쓰는 후보가 있는 경우에는 안분한다.


大吉 또는 たいきち

이름만 쓰더라도 다른 후보 중에 "大吉" 또는 "たいきち"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없다면 유효하다. 만약 동일한 이름의 후보가 있는 경우에는 안분한다.


たち

다른 후보의 이름에 "たち"라는 글자가 포함된 사람이 없다면 유효하다. 만약 있다면 안분하거나 무효로 판단한다.


立春太吉

大와 太를 잘못 적은 것이 명백하므로 유효하다.

立春体吉
体吉는 大吉와 일본어로 발음이 동일하다. 따라서 大吉을 잘못 쓴 것이 명백하므로 유효하다. 다만 体吉이라는 이름을 쓰는 후보가 있거나 그런 이름의 유명인이나 예능인이 있는 경우에는 무효로 본다.

立春某某
某某라는 이름을 쓰는 후보자나 예능인, 유명인이 있다면 무효로 본다.

りっしゅんたいきち
이름을 잘못 읽고 쓴 것인지 애매하므로 무효로 본다. 다만 사전에 저러한 이름을 통칭 사용한다는 신고를 제출한 경우에는 유효하다.

민주자유당

정당명만 기재한 경우 무효이지만, 같은 정당의 다른 후보자가 없는 경우에는 선거장이 판단한다.


다치하루 다이키치 님

경칭을 기재하더라도 유효하다.


다치하루 다이키치 (둥글둥글한 글씨)

글씨체와 관계없이 상식적으로 보아 문자로 기재된 것으로 보인다면 유효하다


다치★하루★다이★키치

'★'는 이름의 일부나 경칭이 아닌 타사기재에 해당해 무효이다.


대머리 아저씨 또는 뚱보 아저씨

신체적 특징은 타사기재에 해당해 무효이다.


다이쨩

별명은 어느 후보자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으므로 무효이다. 다만 유권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경우에는 선거장의 판단 등에 의하여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사전에 통칭 사용의 신고를 한 경우에는 유효하다.


기치토 시 기치토 1-2-34 다치하루 다이키치

이름과 함께 주소를 기입하더라도 유효하다. 다만 기입한 주소가 틀린 경우에는 무효이다.


소설가 다치하루 다이키치

이름과 함께 직업을 기입하더라도 유효하다. 다만 기입한 직업이 틀린 경우에는 무효이다.


소설가

직업만 적은 경우에는 무효이지만, 같은 직업을 가진 다른 후보자가 없는 경우에는 선거장이 판단한다.


글쟁이 다치하루 다이키치

'글쟁이'는 속어로 정식 직업명이 아니므로 무효이다.


다치하루 다이키치에게 투표합니다.

다치하루 다이키치에게 투표하지 않습니다.

다치하루 다이키치 바보

다치하루 다이키치 힘내라

'에게 투표합니다'를 비롯해 사례 모두 타사기재에 해당해 무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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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立春大吉バカ
    2016.06.03 12:11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大吉는 だいきち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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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26년(オ) 제1023호 손해배상청구사건

헤이세이 27년(2015년) 12월 16일 최고재판소 대법정 판결

平成26年(オ)第1023号 損害賠償請求事件, 平成27年12月16日 大法廷判決



주 문

 본건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상고인들의 부담으로 한다.



이 유

 상고대리인 사카키바라 후지코榊原富士子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제1 사건의 개요


1.

 본건은 상고인들이 부부가 혼인한 때에 정하는 바에 따라 부 또는 처의 성씨를 칭하도록 정한 민법 제750조의 규정(이하 '본건 규정'이라 한다.)은 헌법 제13조, 제14조 제1항, 제24조 제1항 및 제2항 등에 위반한다고 주장하고, 본건 규정을 개폐하는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는 입법부작위의 위법을 이유로 피상고인에 대하여 국가배상법 제1조 제1항에 근거하여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이다.


2.

 원심이 적법하다고 확정한 사실관계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상고인 X1(성) x1(명)(호적상의 성명은 「Ax1」이다.)은 Aa와 혼인 시에 부의 성씨를 칭한다고 정하였으나, 통칭의 성씨로 「X1」을 사용하고 있다.
  2. 상고인 X2x2와 상고인X3x3은 혼인 시에 부의 성씨를 칭한다고 정하였으나, 협의상의 이혼을 하였다. 상고인들은 그 후 다시 혼인신고를 제출하였으나, 혼인 후의 성씨의 선택이 되지 아니하여 불수리되었다.
  3. 상고인 X4x4(호적상의 성명은 「Bx4」이다.)는 Bb와의 혼인 시 부의 성씨를 칭한다고 정하였으나, 통칭의 성씨로 「X4」를  사용하고 있다.
  4. 상고인 X5x5(호적상의 성명은 「Cx5」이다.)는 Cc와의 혼인 시 부의 성씨를 칭한다고 정하였으나, 통칭의 성씨로 「X5」를  사용하고 있다.



제2 상고이유 가운데 본건 규정이 헌법 제13조에 위반한다고 한 부분에 대하여


1.

 논지는 본건 규정이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된 인격권의 한 내용인 '성씨의 변경을 강제 받지 아니할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여 헌법 제13조에 위반한다고 하는 것이다.


2.

(1) 성명은 사회적으로 보면 개인을 타인으로부터 식별하여 특정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지만, 동시에 그 개인으로부터 본다면 사람이 개인으로서 존중받을 기초이고, 그 개인의 인격의 상징으로 인격권의 한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最高裁昭和58년(オ) 第1311号 同63年 2月 16日 第三小法廷判決・民集42巻 2号27頁 참조).


(2) 그러나 성씨는 혼인 및 가족에 관한 법제도의 일부로서, 법률이 그 구체적인 내용을 규율하고 있는 것이므로, 성씨에 관한 상기 인격권의 내용도 헌법상 일의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취지에 따라 해석할 때에 정해진 법제도를 먼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법제도를 분리하여 성씨가 변경되는 것 자체를 가지고 즉시 인격권을 침해하고, 위헌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은 상당하지 아니하다.


(3) 따라서 민법에 있어서 성씨에 관한 규정을 통람通覽하면, 사람은 출생 시에 친생자[親生子, 일본 민법상 적출자摘出子]에 대하여는 부모의 성씨를, 친생자가 아닌 자에 대하여는 모의 성씨를 칭하도록 하는 것에 의하여 성씨를 취득하고(민법 제790조), 혼인 시에 부부의 일방은 타방의 성씨를 칭하도록 하는 것에 의하여 성씨가 바뀌며(본건 규정), 이혼이나 혼인의 취소 시에 혼인에 의하여 성씨를 고친 자는 혼인 전의 성씨를 회복한다(동법 제767조 제1항, 제771조, 제749조) 등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양자는 입양 시에 양부모[養親]의 성씨를 칭하도록 하는 것에 의하여 성씨가 바뀌며(동법 제810조), 파양이나 입양의 취소에 의하여 입양 전의 성씨를 회복한다(동법 제816조 제1항, 제808조 제2항) 등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성씨의 성질에 관하여, 성씨는 이름과 같이 개인의 호칭으로서의 의의가 있는 것이나 이름과는 분리된 존재로서 부부 및 그 사이의 미혼의 자나 양친과 양자가 동일한 성씨를 칭하도록 하는 것에 의하여 사회의 구성요소인 가족의 호칭으로서의 의의가 있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집단단위이므로, 그러한 개인의 호칭의 일부인 성씨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을 상기시키는 것으로서 하나로 정하고 있는 것도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4) 본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혼인이라는 신분관계의 변동을 스스로의 의사로 선택하는 것과 함께 부부의 일방의 성씨를 고친다는 모습이 있는 것이고, 스스로의 의사와 관계없이 성씨를 고치도록 하는 것이 강제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성씨는 개인의 호칭으로서의 의의가 있고, 이름과 함께 사회적으로 개인을 타인으로부터 식별하고 특정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면 스스로의 의사만으로 자유롭게 정하거나 또는 고치거나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본래의 성질에 따른 것이 아니고, 일정하고 통일된 기준에 따라 정하며, 또한 바꾼다고 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취급이라고 할 수 없는 점, 상기와 같이 성씨는 이름과는 분리된 존재로서 사회의 구성요소인 가족의 호칭으로서의 의의가 있는 점을 본다면 성씨가 친자관계 등 일정한 신분관계를 반영하고, 혼인을 포함한 신분관계의 변동과 함께 바뀌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은 그 성질상 예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이상과 같이 현행의 법제도의 아래에서 성씨의 성질 등에 비추어 보면 혼인 시에 "성씨의 변경을 강제받지 아니할 자유"가 헌법상의 권리로서 보장되어 있는 인격권의 한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다. 본건 규정은 헌법 제13조에 위반하지 아니한다.


3.

 무엇보다도 상기와 같이 성씨가 이름과 더불어 개인을 타인으로부터 식별하고 특정하는 기능을 가진 것 이외에 사람이 개인으로서 존중되는 기초이며, 그 개인의 인격을 일체로서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 따라 성씨를 바꾸는 자에게 그에 따른, 이른바 아이덴티티의 상실감을 가진다거나, 종전의 성씨를 사용하다가 형성되어 온 타인으로부터 식별되고 특정되는 기능이 저해되는 불이익이나 개인의 신용, 평가, 명예감정 등에도 영향이 미친다는 불이익이 생길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특히 최근에 만혼화晩婚化가 진행되고 혼인 전의 성씨를 사용하는 중에 사회적인 지위나 업적이 구축된 기간이 길어지게 되었으므로 혼인과 더불어 성씨를 고치는 것에 의하여 불이익을 입는 자가 증가하여 온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혼인 전에 구축된 개인의 신용, 평가, 명예감정 등을 혼인 후에도 유지하는 이익 등은 헌법상의 권리로서 보장된 인격권의 한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뒤에서 쓴 대로 성씨를 포함한 혼인 및 가족에 관한 법제도의 본질을 검토하면 상당히 고려해야 하는 인격적 이익이라고는 할 수 있고, 헌법 제24조에서 인정하는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는 것인가 아닌지를 검토할 때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제3 상고이유 가운데 본건 규정이 헌법 제14조 제1항에 위반한다고 한 부분에 대하여


1.

 논지는 본건 규정이 96% 이상의 부부가 부의 성씨를 선택한다는 성차별을 발생시켜 대부분 여성만 불이익을 입게 되는 효과를 가진 규정이므로, 헌법 제14조 제1항에 위반한다는 것이다.


2.

 헌법 제14조 제1항은 법 앞의 평등을 정하고 있고, 이 규정은 사안의 성질에 따라 합리적인 근거에 바탕한 것이 아닌 한, 법적으로 차별적 취급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당 재판소가 설시한 바와 같다(最高裁 昭和37年(オ) 第1472号 同39年 5月 27日 大法廷判決・民集18巻 4号 676頁,最高裁 昭和45年(あ) 第1310号 同48年 4月 4日 大法廷判決・刑集27巻 3号 265頁 등).


 따라서 검토하면 본건 규정은 부부가 부 또는 처의 성씨를 칭하도록 하고 있고, 부부가 어느 쪽의 성씨를 칭할 것인가를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 사이의 협의에 맡기고 있으므로, 그 문언상 성별에 근거하여 법적으로 차별적인 취급을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본건 규정이 정하는 부부동성제[夫婦同氏制] 그 자체에 남녀 간의 형식적인 불평등이 존재하지는 아니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 사이의 개개의 협의 결과로서 부의 성씨를 선택하는 부부가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본건 규정의 존재 자체에서 생기는 결과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본건 규정은 헌법 제14조 제1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3.

 무엇보다도 성씨의 선택에 관하여 지금까지 부夫의 성씨를 선택하는 부부가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보면, 그 현상이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 쌍방의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에 의한 것인가에 대하여 조심하여야 할 것이고, 가령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적인 의식이나 관습에 의하여 영향이 있는 것이라면 그 영향을 배제하여 부부간에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도록 하는 것은 헌법 제14조 제1항의 취지에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은 성씨를 포함한 혼인 및 가족에 관한 법제도의 존재 의의를 검토하면 마땅히 고려하여야 할 사항의 하나라고 할 수 있고, 다음에서 쓴 헌법 제24조에서 인정하는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은 것인가 하는 검토에서 마땅히 고려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제4 상고이유 가운데 본건 규정이 헌법 제24조에 위반한다고 한 부분에 대하여


1.

 논지는 본건 규정이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의 일방이 성씨를 고치도록 하는 것을 혼인신고의 요건으로 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국회의 입법재량의 존재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본건 규정은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24조에 위반한다는 것이다.


2.

(1) 헌법 제24조는 제1항에서 “혼인은 양성兩性의 합의에 따라서만 성립하며,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기본으로 하며, 상호의 협력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혼인을 할지 말지, 언제 누구와 혼인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당사자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취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본건 규정은 혼인의 효력의 하나로 부부가 부 또는 처의 성씨를 칭하는 것을 정하는 것으로, 혼인을 하는 것에 대하여 직접적인 제약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혼인 및 가족에 관한 법제도의 내용의 의미에 따르지 아니한 것을 이유로 혼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택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상기 법제도를 정한 법률이 혼인을 하는 것에 대하여 헌법 제24조 제1항의 취지에 따르지 아니한 제약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법제도의 내용에 따라 혼인을 하는 것이 사실상 제약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는 혼인 및 가족에 관한 법제도의 내용을 정함에 있어서 국회의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것인지 아닌지 검토할 때에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2) 헌법 제24조는 제2항에서 “배우자의 선택, 재산권, 상속, 주거의 선정選定, 이혼과 혼인 및 가족에 관한 그 밖의 사항은 법률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하여 제정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혼인 및 가족에 관한 사항은 관련한 법제도에서 그 구체적 내용이 정해진다는 것이므로, 당해 법제도의 제도 설계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 헌법 제24조 제2항은 구체적인 제도의 구축을 제1차적으로는 국회의 합리적인 입법재량에 맡긴다는 점과 함께 그 입법에 있어서 동조 제1항도 전제로 하면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하여야 한다는 요청, 지침을 나타내는 것에 의하여 그 재량의 한계를 설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헌법 제24조가 본질적으로 다양한 요소를 검토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입법작용에 대하여 입법상의 요청, 지침을 명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요청, 지침은 단순히 헌법상의 권리로서 보장된 인격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양성의 형식적인 평등이 보장된 내용의 법률이 제정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직접 보장된 권리라고는 할 수 없는 인격적 이익까지도 존중하여야 한다는 점, 양성의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점, 혼인제도의 내용에 따라 혼인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부당하게 제약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 등에 대하여도 충분히 배려된 법률의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이 부분에서도 입법재량에 한정적인 지침을 부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1) 다른 한편으로 혼인 및 가족에 관한 사항은 국가의 전통이나 국민감정을 포함한 사회상황에서의 다양한 요인을 포함하고 있고, 각각의 시대에 있어서 부부나 친자 관계에 대한 전체적인 규율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에 의하여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헌법상 직접 보장된 권리라고는 할 수 없는 인격적 이익이나 실질적 평등은 그 내용으로 다양한 것이 고려되며, 그 실현의 본질적인 모습은 그때마다의 사회적 조건, 국민생활의 상황, 가족의 본질적 요소 등과의 관계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2) 그렇다면 헌법상의 권리로서 보장된 인격권을 부당하게 침해하여 헌법 제13조에 위반하는 입법조치나 불합리한 차별을 정하여 헌법 제14조 제1항에 위반하는 입법조치를 취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점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고, 헌법 제24조의 요청, 지침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떠한 입법조치를 취할 것인가의 선택결정이 상기 (1)과 같이 국회의 다방면에 걸친 검토와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혼인 및 가족에 관한 법제도를 정한 법률의 규정이 헌법 제13조, 제14조 제1항에 위반하지 않는 경우에 다시금 헌법 제24조에도 적합한 것으로서 인정되는지 아닌지는 당해 법제도의 취지나 동 제도를 채용하게 된 것에 따라 생기는 영향에 바탕하여 검토하고, 당해 규정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의 요청에 비추어 합리성을 잃고 국회의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인가 아닌가하는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이 상당하다.


4.

 이상의 관점에서 본건 규정의 헌법 제24조 적합성에 대하여 검토한다.


(1)

가. 혼인과 더불어 부부가 동일한 성씨를 칭하는 부부동성제는 구 민법(쇼와 22년(1947) 법률 제222호에 의한 개정 전의 메이지 31년(1898) 법률 제9호)이 시행된 메이지 31년(1898)에 우리나라의 법제도로서 채용되어, 우리나라의 사회에 정착하여 온 것이다. 전기前記와 같이 성씨는 가족의 호칭으로서의 의의가 있는 바, 현행의 민법 아래에서도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집단단위로 이해되며, 그 호칭을 하나로 정하는 것에는 합리성이 인정된다.


 그리고 부부가 동일한 성씨를 칭하는 것은 상기의 가족이라는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는 일원이라는 점을 대외적으로 공시하고, 식별하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혼인의 중요한 효과로서 부부간의 자가 부부의 공동친권에 복종하는 친생자라고 하는 점, 친생자인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자가 양친 쌍방과 동일한 성씨로 구성될 것을 확보하는 것에도 일정한 의의가 있다는 점이 고려된다. 또한 가족을 구성하는 개인이 동일한 성씨를 칭하는 것에 따라 가족이라는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는 일원으로 있다는 점을 실감하는 것에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바이다. 더욱이 부부동성제의 아래에서는 자의 입장으로서 어느 부모도 같은 성씨를 동일하게 가진다는 점에 의한 이익을 향유하기 쉽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기前記와 같이 본건 규정이 정하는 부부동성제 그 자체에 남녀 간의 형식적인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부부가 어느 쪽의 성씨를 칭할 것인지는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 사이의 협의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고 있다.


나. 이에 대하여 부부동성제 아래에서는 혼인과 더불어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의 일방은 반드시 성씨를 고치도록 하는 점, 혼인에 의하여 성씨를 바꾼 자에게 그에 의하여 이른바 아이덴티티의 상실감을 가진다거나 혼인 전의 성씨를 사용하는 도중에 형성된 개인의 사회적인 신용, 평가, 명예감정 등을 유지하는 것이 곤란하게 되었다는 등의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성씨의 선택에 관하여 부夫의 성씨를 선택하는 부부가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현상에서 본다면, 처가 되는 여성이 상기의 불이익을 받을 경우가 많은 상황이 생기고 있는 것을 추인追認할 수 있다. 또한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의 어느 한 쪽이 이러한 불이익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오히려 혼인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는 자가 존재한다는 점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동성제는 혼인 전의 성씨를 통칭通稱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허락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최근 혼인 전의 성씨를 통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바, 상기의 불이익은 이러한 성씨의 통칭 사용이 확대되는 것에 의하여 일정정도 완화될 수 있는 것이다.


다. 이상의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본건 규정에 채용된 부부동성제가 부부가 다른 성씨를 칭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상기와 같은 상황 아래 직접적으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의 요청에 비추어 합리성을 잃은 제도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본건 규정은 헌법 제24조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2) 또한 논지로는 부부동성제를 규제라고 파악한 뒤 이에 따라서 규제의 정도가 작은, 성씨에 관계된 제도(이를테면 부부별성을 희망하는 자에 이를 가능하도록 하는 이른바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채택할 여지가 있는 점에 대한 지적을 하는 부분이 있는 바, 상기 (1)의 판단은 그러한 제도에 합리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상기와 같이 부부동성제의 채용에 대하여는 친생자 제도 등 혼인제도나 성씨의 본질적 요소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 의거하는 바가 적지 않고, 그러한 상황에 관한 판단을 포함하여 그러한 종류의 제도의 방향은 국회에서 논하고 판단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제5 그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하여


 논지는 헌법 제98조 제1항 위반 및 이유의 불비不備를 말하지만, 그 실질은 단순히 법령 위반을 말하는 것으로 민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및 제2항에 규정된 사유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아니한다.


제6 결론


 이상에 따르면 본건 규정을 개폐하는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는 국가배상법 제1조 제1항의 적용상 위법이라고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상고인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논지는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재판관 야마우라 요시키山浦善樹의 반대의견 외에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또한 재판관 데라다 이쓰로寺田逸郎의 보충의견, 재판관 사쿠라이 류코櫻井龍子, 재판관 오카베 기요코岡部喜代子, 재판관 오니마루 가오루鬼丸かおる, 재판관 기우치 미치요시木内道祥의 각 의견이 있다.


재판관 데라다 이쓰로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오카베 재판관 및 기우치 재판관의 각 의견에서의 헌법적합성의 논의에 비추어 다수의견의 제4의 4.의 기술을 부연하는 취지로 보충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본건에서 상고인들이 주장하는 것은 성씨가 같은 부부만이 아니라 성씨가 다른 부부를 법률상의 존재로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으로, 이른바 법률관계의 메뉴에 바람직한 선택지가 준비되지 아니한 것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현행 제도의 불비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주장에 대하여 헌법적합성 심사에서 재판소가 적극적으로 평가를 하는 것은 본질적인 어려움이 있다.


(1) 대개 사람끼리 어떤 연결을 가지고 생활하고, 살아가는 것은 그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하여야 함이 마땅한 일이다. 헌법에서도 그것을 제13조에 따라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법률제도로 보면 혼인부부와 같은 형태 위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더라도, 가족제도의 일부로 구성된 가까운 제3자만이 아니라 넓게 사회에 효과를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위치지어 진다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현행 민법에서도 친자관계의 성립, 상속에서의 지위,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거래상의 의무 등에 대하여 부부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형태의 부부관계가 규정되어 있다. 그러한 법률제도로서의 성격이나 현실로 부부, 친자 등으로 구성된 가족이 넓게 사회의 기본적 구성요소가 되어 있다는 사정 등에서 법률상의 구조로서의 혼인부부도 기타의 가족관계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구성원 일반으로부터 보더라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규격화된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개별 당사자의 다양한 의사에 따라 변용되는 것에 대하여는 억제하고 있다. 민사상의 법률제도로서 당사자의 의사에 의하여 법률관계를 변용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것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는 그 밖에 법인제도(회사제도)나 신탁제도 등이 있으나, 가족제도는 그들과 비교하더라도 사회 일반에 관한 정도가 큰 것이라고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그 자세가 한층 강하다고 생각된다.


(2) 현행 민법에서 혼인은 상기와 같이 상속관계(제890조, 제900조 등),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거래관계(제761조) 등 당사자 상호의 관계에 그치지 않는 의의·효력을 가진 것이지만, 남녀 간에 인정되는 제도로서의 혼인을 특징짓는 것은 친생자 제도(제772조 이하)를 둔 것밖에 없고, 그 제도가 혼인제도의 효력으로서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주). 현행 민법 아래에서는 부부 및 그 친생자가 가족관계의 기본을 이룬다고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는 것도 그러한 구조의 이해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혼인과 결합되어 있는 친생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사회학적으로 보더라도 불합리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고, 헌법 제24조와의 정합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부의 성씨에 관한 규정은 바로 부부 각각과의 동일한 성씨를 칭하는 등의 연결을 가진 존재로서 친생자가 의의지어지고 있는 점(제790조 제1항)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이는 다수의견에서도 같은 취지이다(다만, 이것만이 성씨에 관한 규정의 정합성을 근거 짓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다수의견에서 설시하고 있는 대로이다.). 복잡성을 피하고 규격화하도록 하는 요청 속에서 구조를 구성하고자 하는 경우에 법률상의 효과가 되는 기둥을 상정하고, 그것과의 정합성을 추구하며 다른 부분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어떠한 불합리가 없다고 고려한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부부 성씨의 제도를 사회의 다수가 받아들이고 있는 때에 그 원칙으로서의 위치 지어진 합리성을 의심할 여지가 그정도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성동일성 장애자의 성별의 취급의 특례에 관한 법률에 기초하여 남성에서의 성별의 취급의 변경 심판을 받은 자의 처의 잉태자와 적출추정 규정의 적용에 관한 最高裁 平成25年(許) 第5号 同年 12月 10日 第三小法廷決定・民集67巻 9号 1847頁에 있어서 오카다 보충의견(1852頁 이하) 참조.

친생추정·친생부인의 구조는 처에 의한 잉태 출생자는 부 스스로가 부정하지 아니하는 한 부를 부로 한다는 생각에 따른 것으로, 처가 자를 얻은 경우에 부의 의사에 반하여 다른 남성으로부터 그 자子가 스스로를 부라고 하는 자라는 뜻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의를 혼인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법률상의 혼인으로서의 효력의 핵심부분이라는 효과가 바로 사회적으로 넓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그에 따라 법률혼은 형태에 따른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가족의 법률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요구하는 관계가 다양화하는 것에 대하여 규격화된 구조를 답답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충분히 파악되고 있으며, 그러한 경향을 고려하여 의향에 따른 선택지를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는 의견·반대의견의 입장은 그러한 점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법심사라는 입장에서 현행 제도가 불합리한지 아닌지를 논함에 있어서는 상기의 경향을 그대로 긍정적인 결론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운 바가 있다.


 상기와 같이 이 분야에서는 당사자의 합의를 계기로 하는 것에 의한 제도를 복잡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억제적인 역학이 작동하고 있다는 벽이 우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부·친자의 현실의 가족으로서의 모습이 원래부터 지역 등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법적으로는 부부관계, 친자관계가 규격화되어 정해져왔다는 것이 지적되어 온 것이다. 여러 외국의 입법에서도 유연화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유연화하고자 하는 것이 상당한지는 그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평가에 따르는 바가 크다. 다음으로, 선택지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 불합리한가 어떤가에 대하여는 제도 전체와의 정합성이나 현실적 타당성을 고려한 뒤에야 선택지가 정하여질 것 내지는 적확한 판단을 하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바, 현행 제도의 친생자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 성씨를 다르게 하는 부부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는 논의의 폭을 남기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를테면 친생자의 성씨를 어떻게 하는가 등의 점에서 친생자의 구조의 정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는 의견이 나누어진 바가 있고(이미 헤이세이 8년(1996)의 혼인제도에 관한 법제심의회의 답신에서 자녀의 성씨의 본질을 둘러싸고 논의를 정리하는 것이 곤란해졌던 일이 있다.), 어떠한 구조를 선택지의 대상으로 검토의 도마 위에 올릴 것인가는 유동적인 요소를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현행법에서 정하는 친생자의 구조와의 연결이 혼인제도의 본질적 요소로서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상기와 같은 바이며, 친생자의 구조와 분리시킨 새로운 제도를 구상하는 것도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것까지 고려에 넣은 뒤에 판단하게 된다면 사법의 장에서 심사의 한계를 훨씬 넘게 된다. 또한 성씨의 합리적인 방향은 그 기반이 상기와 같이 민법에 정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견에서 나타난 본질적인 성격을 감안하면서 그 사회생활 상의 의의를 감안하여 넓게 검토를 해 나가는 것으로 상당성을 늘릴 수는 있겠으나, 그러한 방향에서의 검토는 동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사회생활에 관계된 제 사정의 요소를 묻는 정책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다기多岐에 걸친 조건 아래에서의 종합적인 검토를 염두에 둔다면, 여러 조건에 대하여 상당히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할 상황에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다고 할 수 없는 상황 아래에서는 선택지가 두어져있지 않다는 것의 불합리를 재판의 테두리 내에서 찾기는 곤란하고, 오히려 이를 국민적 논의, 즉 민주주의적인 프로세스에 맡기는 것에 의하여 합리적인 구조의 방향을 폭 넓게 검토하여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일의 성격에 맞는 해결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지의 여부가 특정한 소수자의 습속習俗에 관계되어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적인 프로세스에 의하여 공정한 검토에의 기대를 방해할 수 있는 사정도,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혼에 있어서 혼씨속칭婚氏続称의 구조(민법 제767조 제2항, [이혼 후에도 혼인 시의 성씨를 유지하는 것])를 예로 들어 신분관계의 변동과 더불어 성씨를 바꾸지 않을 선택지가 현행법에 두어져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혼 후의 성씨의 합리적인 방향에 대하여 국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새로운 선택지를 두어 그 구조가 법 개정에 의하여 두어졌다고 하는, 그 실현까지의 경위를 간과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야말로 문제의 성격에 대하여 상기 다수 의견의 이해가 바르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재판관 오카베 기요코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나는 본건 상고를 기각하여야 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찬성하지만, 본건 규정이 헌법에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설시에는 동조할 수 없으므로 그 점에 관하여 의견을 기술하고 싶다.


1. 본건 규정의 헌법 제24조 적합성

(1) 본건 규정의 쇼와 22년 민법 개정시의 헌법 제24조 적합성
 다수의견이 말한 대로 성씨는 개인의 호칭으로서의 의의가 있고, 이름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개인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식별하고 특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와 친자親子라는 신분관계는 인간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관계인 동시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그러한 관계를 표상하기 위하여 동일한 성씨라는 기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합리적인 제도로 이해된다. 사회생활 위에서 그 신분관계를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고, 부부와 그 사이의 미성숙 자녀라는 공동생활 상의 결합을 나타내는 것도 유익하다.

 부부동성의 제도는 메이지 민법(쇼와 22년 법률 제222호에 의하여 개정되기 전의 메이지 31년 법률 제9호) 아래에서 대부분의 경우 처는 혼인에 의하여 부의 가에 들어가고, 가의 명칭인 부의 성씨를 칭하는 것에 의하여 실현되었다. 쇼와 22년 법률 제222호에 의한 민법 개정 시에도 부부와 그 사이의 미성숙 자녀라는 가족을 염두로, 처는 가정 내에서 가사육아를 맡고 있는 근대적 가족생활이 표준적인 모습으로서 인식되었고, 부의 성씨는 혼인에 의하여 변경되지 않고 처의 성씨가 부와 동일하게 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아니하였다. 실제 생활에서도 부가 생계를 담당하고, 처가 그를 도와 또는 가사육아를 맡고 있는 태양態様이 많았으므로 처가 그 성씨를 변경하더라도 특히 문제를 발생시키는 일은 적었다고 할 수 있다. 본건 규정은 부부가 가에서 독립하여 각자가 독립한 법주체로서 협의하여 어느 쪽의 성씨를 칭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형식적 평등을 규정한 점에 의의가 있고, 쇼와 22년(1946)에 제정된 당시로서는 합리성이 있는 규정이었다. 따라서 본건 규정은 제정 당시에 있어서는 헌법 제24조에 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본건 규정의 현 시점의 헌법 제24조 적합성
가. 그런데 본건 규정의 제정 후에 장기간이 경과하여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은 현저히 늘어나게 되었다. 결혼 전에 일하는 여성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혼인 후에 일하는 여성도 증가하였다. 그 직업도 부夫를 돕는 가내적인 일에 그치지 않고 개인, 사회, 기관 기타와의 사이에서 독립하여 법주체로서 계약 등을 하고 일하며, 또한 사업 주체로서 경제활동을 하는 등 사회와 넓게 접촉하는 활동에 종사할 기회도 증가하여 왔다. 그러자 결혼 전의 성씨에서 혼인 후의 성씨로 변경하는 것에 의하여 당해 개인이 동일인이라고 하는 개인의 식별, 특정에 곤란을 가져오게 되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혼인 후에도 혼인 전의 성씨에 의하여 사회적·경제적인 상황에서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욕구가 높아져 왔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식별곤란이라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를테면 혼인 전에 영업실적을 쌓은 자가 혼인 후의 성씨로 변경하게 된 것에 의하여 외관상 그 실적에 의한 평가를 받을 수 없게 될 우려가 있고, 또한 혼인 전에 특허를 취득한 자와 혼인 후에 특허를 취득한 자가 동일인이라고 인식되지 않을 우려가 있으며, 또는 논문의 연속성이 인정되지 않을 우려가 있는 등 그 업적, 실적, 성과 등의 법적 이익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될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성씨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기능이 동일성 식별기능이라고 생각한다면, 혼인에 의하여 취득한 새로운 성씨를 사용함에 의하여 당해 개인의 동일성 식별에 지장을 미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혼인 전의 성씨 사용을 희망하는 것에는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동일성 식별을 위한 혼인 전의 성씨 사용은 여성의 사회진출의 추진, 일과 가정의 양립책 등에 의하여 혼인 전으로부터 계속하여 사회생활을 보내는 여성이 증가하는 것과 함께 그 합리성과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의 글로벌화나 인터넷 등에서 성명이 검색할 수 있는 등의 이른바 성명 자체가 세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성씨에 의한 개인 식별성의 중요성은 더욱 큰 것이며, 혼인 전부터의 성씨의 사용의 유용성,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쇼와 60년(1985)에 비준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女子に対するあらゆる形態の差別の撤廃に関する条約]에 근거하여 설치된 여자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헤이세이 15년(2003) 이래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의 민법에 부부의 성씨의 선택에 관한 차별적인 법 규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고, 그 폐지를 요청한 일이 있다.

나. 다음으로 성씨는 이름과의 복합에 의하여 개인 식별의 기호로 되어있지만, 단순한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성씨는 신분관계의 변동에 의하여 변동하는 것이므로 신분관계에 내재하는 혈연 내지는 가족, 민족, 출신지 등 당해 개인의 배경이나 속성 등을 포함한 것으로, 성씨를 변경한 일방은 이른바 아이덴티티를 잃은 것과 같은 상실감을 가지기에 이르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로 96%를 넘는 부부가 부의 성씨를 칭하는 혼인을 하고 있는 바에 비추어볼 때, 최근에 확대되어 온 상기의 개인 식별 기능에 대한 지장, 자기상실감 등의 부담은 거의 처에게 생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의 성씨를 칭하는 것은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 쌍방의 협의에 의한 것이라지만, 96%의 다수가 부의 성씨를 칭하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경제적인 입장이 약하고, 가정생활에서의 입장이 약하고, 다양한 사실상의 압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가져오는 것이라고 할 것이고, 부夫의 성씨를 칭하는 것이 처의 의사에 바탕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사결정의 과정에 현실의 불평등과 역학관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부분에 배려를 하지 않은 채 부부 동성에 예외를 두지 않은 것은 많은 경우에 처가 될 자만이 개인의 존엄의 기초인 개인 식별 기능을 잃게 되고, 또한 자기상실감이라는 부담을 지는 것이 되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한 제도라고는 할 수 없다.

다. 그리고 성씨를 고치는 것에 의하여 발생하는 상기와 같은 개인 식별 기능에의 장애, 자기상실감 등의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부부가 되고자하는 자의 어느 일방이 이러한 불이익을 받는 것을 피하고자 법률상의 혼인을 하지 아니한다는 선택을 하는 자를 낳고 있다.

 본건 규정은 혼인의 효력의 하나로서 부부가 부 또는 처의 성씨를 칭할 것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혼인은 호적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신고하는 것에 의하여 그 효력이 생긴다고 하고(민법 제739조 제1항), 부부가 칭할 성씨는 혼인신고시의 필요적 기재사항이다(호적법 제74조 제1항). 따라서 현시점에서는 부부가 칭할 성씨를 선택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은 혼인 성립에 불합리한 요건을 부과한 것으로서 혼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다.

라. 다수의견은 성씨가 가족이라고 하는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집단단위의 호칭이라는 것에서 그 합리성의 근거를 구하고, 성씨가 가족을 구성하는 일원이라는 것을 공시하고 식별하는 기능, 또한 그를 실감하는 것의 의의 등을 강조한다. 나도 그 점 자체에 이의를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전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이나 재혼의 증가, 비혼화, 만혼화, 고령화 등에 의하여 가족형태도 다양화하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 성씨가 주는 가족의 호칭이라는 의의나 기능을 그 정도로 중시할 수는 없다. 세상의 가족은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부부와 그 사이의 친생자만을 구성원으로 하는 경우만이 아니다. 민법이 부부와 친생자를 원칙적인 가족형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가족 이외의 형태의 가족의 출현을 법이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가족과 성씨의 결합에는 예외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견은 성씨를 고치는 것에 의하여 생기는 상기의 불이익은 혼인 전의 성씨의 통칭사용이 확산됨에 따라 일정 정도 완화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통칭은 편의적인 것으로, 사용의 허부許否, 허용 범위 등이 정하여진 것은 아니고, 현재 공적인 문서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흠결이 있는 이상 통칭명과 호적명과의 동일성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원래 통칭사용은 혼인에 의하여 변동된 성씨로는 당해 개인의 동일성 식별에 지장이 있는 것을 나타내는 증좌證左인 것이다. 이미 혼인을 주저하는 사태가 생기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 상기의 불이익이 일정 정도 완화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부가 별도의 성씨를 칭하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할 합리성이 인정되지는 않는다.

마. 이상과 같이 본건 규정은 쇼와 22년(1946)의 민법 개정 이후 사회의 변화와 함께 그 합리성은 서서히 흔들리고 있고,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부부가 다른 성씨를 칭하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의 요청에 비추어 합리성을 잃고, 국회의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상태에 이르게 되어 헌법 제24조에 위반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본건 규정을 개폐하는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의 위법에 대하여

(1) 상기와 같이 본건 규정은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헌법 제24조에 위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 재판소나 하급심에서 본건 규정이 헌법 제24조에 적합하지 않다는 취지의 판단이 된 일은 찾을 수 없다. 또한 본건 규정에 대하여는 헤이세이 6년(1994)에 법제심의회 민법부회 신분법소위원회의 심의에 바탕한 것으로서 법무성 민사국 참사관실에 의하여 공표된 「혼인제도 등에 관한 민법개정요강시안」 및 그를 다시 검토한 뒤에 헤이세이 8년(1996)에 법제심의회가 법무대신에게 답신한 「민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안 요강」에서는 이른바 선택적 부부별성제라는 본건 규정의 개정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 개정안은 개인의 성씨에 대한 인격적 이익을 법제도상 보호하여야 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본건 규정이 위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의된 결과 작성된 것은 아니다. 혼인 및 가족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그 구체적인 제도의 구축이 제1차적으로는 국회의 합리적인 입법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뜻에 비추어 본다면, 본건 규정에 대하여 위헌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법판단이 되지 않은 상황 아래에서 본건 규정이 헌법 제24조에 위반하는 것이 명백하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2) 이상에 따르면 본건 규정은 헌법 제24조에 위반하는 것이지만, 이를 국가배상법 제1조 제1항의 적용의 관점에서 본 경우에는 헌법상 보장된 또는 보호되고 있는 권리 이익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제약하는 것으로서 헌법의 규정에 위반하는 것이 명백하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장기에 걸쳐 개폐 등의 입법조치를 게을리하였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건 입법부작위는 국가배상법 제1조 제1항의 적용상 위법의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고, 본건 상고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재판관 사쿠라이 류코, 재판관 오니마루 가오루는 재판관 오카베 기요코의 의견에 동조한다.

재판관 기우치 미치요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성명권의 인격권적 파악, 실질적 남녀평등, 혼인의 자유 등 가족에 관련한 헌법적 과제가 부부의 성씨에 관하여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과제를 상고인들은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중요한 것이지만, 민법 제750조의 헌법 적합성이라는 점에서는 혼인에 있어서 부부동성제는 헌법 제24조에서 말하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위반한다고 해석된다. 내가 다수의견과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이 점이며, 이하 이에 대해 기술한다.


1. 헌법 제24조의 취지
 헌법 제24조는, 동조 제1항은 혼인을 할 것인지, 언제 누구와 혼인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당사자 사이의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것으로서, 혼인의 자유와 혼인에 있어서 부부간의 권리 평등을 정하고, 동조 제2항은 제1항을 전제로 하여 혼인 법제도의 입법 재량의 한계를 설정한 것이다.

 본건 규정은 혼인 시에 예외 없이 부부의 한쪽은 종래의 성씨를 유지하고, 다른 한쪽은 종래의 성씨를 고치도록 하는 것으로, 이는 헌법 제24조 제1항에서 말하는 혼인에 있어서 부부의 권리 평등을 해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부의 권리 평등이 헌법상 어떠한 제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문제는 부부동성제도에 의한 제약이 헌법 제24조 제2항이 허용하는 재량을 넘어섰는지 아닌지이다.

2. 성씨의 변경에 의한 이익의 침해
 혼인적령은 남 18세, 여 16세이지만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혼인에 의하여 성인으로 본다고 하는 것처럼 대다수의 혼인 당사자는 이미 종래의 사회생활을 거친 사회적인 존재, 즉 사회에 누구이다 라고 인지·인식된 존재가 되어 있다.

 이러한 두 사람이 혼인이라는 결합을 선택할 때에 그 성씨 사용을 계속할 수 없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극히 크나큰 제약이 된다.

 사람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인식된 경우, 직업 내지 소속과 그 사람의 성씨, 또는 주거지와 그 사람의 성씨의 두 가지 요소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것이 통례이다.

 성씨의 변경은 본래적인 개별인식의 표상이어야 하는 성명 가운데 성씨만을 변경하는 것에 그친다고 하나, 직업 내지 소속과 성씨 또는 주거지와 성씨에 의한 인식을 전제로 하면 변경의 정도는 절반에 그치지 아니하고 변경 전의 성씨의 인물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에게 있어 그 존재의 사회적인 인식은 지켜져야 할 중요한 이익이며, 이를 잃는 것은 중대한 이익의 침해이다. 동성제도에 의하여 성씨를 고치지 않을 수 없게 된 당사자는 그러한 이익의 침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3. 부부동성제도의 합리성
 동성제도에 의하여 헌법상의 권리이익의 제약이 허용된 것인가 아닌가는 헌법 제24조에서 말하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의 요청에 비추어, 합리성을 잃고 국회의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어섰는가 아닌가의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은 다수의견이 설시한 바와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되는 합리성이란 부부가 동성인 것의 합리성이 아니라, 부부동성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의 합리성이며, 입법재량의 합리성이라고 하는 경우 단순히 부부동성이 되는 것에 합리성이 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부부동성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에 합리성이 있다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4. 신분관계의 변동과 성씨
 민법이 채용하고 있는 신분관계의 변동과 더불어 성씨가 변한다고 하는 원칙은 그 자체가 불합리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원칙을 헌법이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를 혼인의 경우에 대하여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무전제로 지켜져야 할 이익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신분관계의 변동에 더불어 성씨가 변한다고 하는 원칙이 민법상 일관하고 있는지를 말한다면 그렇지도 않다. 이혼시의 성씨의 속칭(혼씨속칭婚氏続称)은 쇼와 51년(1976) 개정, 파양시의 성씨의 속칭은 쇼와 62년(1987) 개정에 의하여 도입된 것이지만, 이혼·파양이라는 신분관계의 변동이 있더라도 그 선택에 따라 종래의 성씨를 계속하여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 개정에서는 각 개인의 사회적 활동이 활발해진 것과 혼인 전의 성씨에 의하여 사회생활에 있어서 자기의 동일성을 유지하여 온 자에게 있어 큰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는 부부동성제도의 문제를 배경으로 한 것은 의식되고 있고, 이에는 당분간 손을 대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혼인생활의 사이에 형성된 사회적인 인식을 이혼에 의하여 잃는 불이익을 구제한다고 하는 취지였다.

5. 성씨의 법률적인 의미와 효용
 쇼와 22년 개정 전의 민법은 성씨는 “가家”로의 출입에 연동한 것이었고, “가家”로의 출입에 다양한 법률효과가 결부되었으나, 동년의 개정에 의하여 “가家”는 폐지되고, 개정 후의 현행 민법은 상속에 대하여도 친권에 대하여도 성씨에 법률효과를 부여하지 아니한다. 현행 민법이 성씨에 법률효과를 주고 있는 것은 겨우 제사에 관한 권리의 승계와의 관계에 그친다.

 그래서 동성의 효용은 가족의 일체감 등 법률효과 이외의 사항에서 구해지고 있다.

 다수의견은 개인이 동일한 성씨를 칭하는 것에 의하여 가족이라고 하는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는 일원이라는 점을 실감하는 의식을 합리성의 하나의 근거로 삼지만, 이 점에 대하여 나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가족 가운데 일원이라는 점을 실감, 부부·친자라는 점의 실감은 동성이라는 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인가를, 실감을 위하여 동성이 필요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동성이 아니라고 부부·친자라는 점의 실감이 생기지 아니한다고는 할 수 없다.

 먼저 인간의 사회적 인식에 있어서 호칭은 통례 직업 내지 소속과 성씨, 또는 주거지와 성씨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했지만, 부부·친자간의 개별인식은 성씨보다도 이름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통상 부부·친자 사이에 상대방을 성씨로 부르지는 않는다. 이는 부부·친자가 동성이어서가 아니라, 퍼스트네임[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부부·친자 관계이기 때문이고, 다른 성씨의 부부가 생기더라도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외적인 공시·식별이란 두 사람이 동성이라는 점에 의하여 부부임을 사회적으로 나타내는 것, 부부간에 미성숙 자녀가 생긴 경우, 부부와 미성숙 자녀가 동성이라는 점에 의하여 부부·친자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한 동성의 기능은 존재하고,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성이라는 것은 부부의 증명을 하는 것은 아니고 친자의 증명도 아니다. 부부라는 것, 친자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제3자가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부부동성(나아가서는 부부·친자의 동성)이 제3자에 부부·친자가 아닐까하는 인상을 주고, 부부·친자라는 실감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는 한다. 이것이 부부동성이 가지는 이익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부동성인 점의 합리성이 아니라, 부부동성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의 합리성인 것이다.

 부부동성이 가진 이익이 그러한 것에 그치는 한편, 동성이 아닌 혼인을 한 부부는 파탄하기 쉽다거나 부부간의 자녀 생육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는 근거는 없으므로, 부부동성의 효용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동성에 예외를 두지 아니할 것에 합리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6. 입법재량권과의 관계
 혼인 및 그와 더불어 성씨는 법률에 의하여 제도화된 이상 당연히 입법부에 재량권이 있지만, 그 재량권의 범위는 합리성을 가진 제도가 복수인 때에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부부동성에 예외를 두는 제도로는 다양한 것이 있을 수 있다(헤이세이 8년의 요강에서는 하나의 제안이 있었으나, 그 전에는 복수의 안이 존재하였다.). 예외를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는 입법부의 재량의 범위이다.

 부부동성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점을 고치지 않고, 결혼 시에 성씨를 바꾸도록 한 것에 의하여 중대한 불이익을 받는 것을 완화하는 선택지로서 다수의견은 통칭을 들고 있다. 그러나 법제화되지 아니한 통칭은 통칭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상대방의 판단에 의할 수밖에 없고, 성씨를 고친 자에게 하나하나 상대방의 대응을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개인의 호칭의 제도로서 큰 흠결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통칭을 법제화한다면 전혀 새로운 성격의 성씨를 탄생시키는 것이 된다. 그 당부는 별론으로 하되, 법제화가 되지 아니한 채로 부부동성의 합리성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따라서 국회의 입법재량권을 고려하더라도 부부동성제도는 예외를 허용하지 아니한 것에 합리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고, 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7. 자녀 육성과 부부동성
 다수의견은 부부동성에 의하여 친생자인 것이 나타나는 점, 양친과 함께 성씨를 같이 쓰는 것이 자녀의 이익이라고 한다. 이는 부부와 그 사이의 미성숙 자녀를 상정한 것이다.
부부와 그 사이의 미성숙 자녀를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로 생각하는 것 자체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부부에게도 이별이 있고, 이혼한 부모가 혼씨속칭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성씨를 다르게 하게 된다. 부부동성에 의하여 육성에 해당하는 부모가 동성인 것이 보장된 것은 초혼이 유지되어 있는 부부간의 자녀뿐이다.

 자녀의 이익의 관점에서 말하게 된다면 부부가 동성이라는 것이 미성숙 자녀의 육성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미성숙 자녀의 양육은 사회 지속의 관점에서 중요한 일이고, 제1차적으로 부모의 권한이자 책무이지만, 그 책무를 맡은 것은 부부일 수도 있으며, 이혼한 부모일 수도 있고, 사실혼 내지 미혼의 부모일 수도 있다. 실제로 부부가 아닌 부모라 하더라도 미성숙 자녀의 양육은 충분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부부라 하더라도 부부간에 분쟁이 생겨 미성숙 자녀의 양육에 지장이 있는 경우도 있다.

 미성숙 자녀에 대한 양육의 책임과 의무라는 점에 있어서 부부인가 아닌가, 동성인가 아닌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자녀의 육성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지금의 시대이며, 부부가 동성인 것이 미성숙 자녀의 육성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8. 본건 입법부작위의 국가배상법상의 위법성의 유무에 대하여
 본건 규정은 헌법 제24조에 위반하는 것이지만, 국가배상법 제1조 제1항의 위법성에 대하여는 헌법상 보장된 또는 보호되고 있는 권리이익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제약하는 것으로서 헌법 규정에 위반하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장기간에 걸쳐 개폐 등의 입법조치를 게을리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고, 위법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재판관 야마우라 요시키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나는 다수의견과 달리 본건 규정은 헌법 제24조를 위반하고, 본건 규정을 개폐할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는 국가배상법 제1조 제1항의 적용상 위법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원 판결을 파기하여 손해액의 산정을 위하여 본건을 환송함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하에서 그 이유를 기술한다.



1. 본건 규정의 헌법 제24조 적합성

 본건 규정의 헌법 제24조 적합성에 대하여는 본건 규정이 동조에 위반하는 것이라는 오카베 재판관의 의견에 동조한다.



2. 본건 규정을 개폐하는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의 위법에 대하여


(1) 사회구조의 변화

 오카베 재판관의 의견에도 있는 것처럼 전후 여성의 사회진출은 현저해졌고, 혼인 전에 일하는 여성이 증가한 것뿐만 아니라, 혼인 후에 일하는 여성도 증가하였다. 만혼화도 진행되고, 성씨를 고치는 것에 의하여 생기는 혼인 전의 성씨를 사용하는 중에 형성되어 온 타인으로부터 식별하고 특정되는 기능이 저해되는 불이익이나 개인의 신용, 평가, 명예감정 등에도 영향이 미쳐 불이익은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 이는 헤이세이 6년에 법제심의회 민법부회 신분법소위원회의 심의에 기반한 것으로서 법무성 민사국 참사관실에 의하여 공표된 「혼인제도 등에 관한 민법개정요강시안」에서도 “……이 규정 아래에서의 혼인의 실태를 보면 압도적 대다수가 부夫의 성씨를 칭하는 혼인을 하고 있고, 법의 외관[建前]은 차치하고서라도 여성이 결혼에 의하여 성씨를 변경하는 것이 사회적 실태가 되고 있다. 이에 여성의 사회진출이 현저해 진 쇼와 50년대 이후, 주로 사회에서 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여성의 측에서 여성에 있어 혼인에 의하여 개성이, 그 직업활동·사회활동에 현저한 불이익·지장을 가져오고 있으므로, (선택적) 부부별성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타나기에 이른 근거가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기前記의 우리나라에 있어서 사회구조의 변화에 의하여 더욱 커지게 된 불이익은 우리나라 정부 내에서도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2) 국내에 있어서 입법의 동향

 이러한 사회구조의 변화를 받아들여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본건 규정의 개정을 향해 다양한 검토가 있었다.


 그 결과 상기의 「혼인제도 등에 관한 민법개정요강시안」 및 이를 다시 검토한 뒤 헤이세이 8년에 법제심의회가 법무대신에게 답신한 “민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안 요강”에 있어서는 이른바 선택적 부부별성제라는 본건 규정의 개정안이 제시되었다.


 상기 개정안은 본건 규정이 위헌인 것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기와 같이 본건 규정이 주로 여성에게 불이익·지장을 불러오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외에 “우리나라에 있어서 최근 점점 개인의 존엄에 대한 자각이 높아진다는 점이 나타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개인의 성씨에 대한 인격적 이익을 법제도상 보호하여야 할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하더라도 틀린 것은 아니다.”, “부부가 별성을 칭하는 것이 부부·친자 관계의 본질적 이념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부부별성제가 실현되어 있다는 한 가지 점만으로도 명백해진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혼인 시에 부부의 일방이 성씨를 고치도록 한 본건 규정에는 인격적 이익이나 부부간의 실질적 평등의 점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의식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상기 개정안 자체는 최종적으로 국회에 제출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 뒤에 같은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 누차에 걸쳐 제출되어 왔고, 또한 국회에서도 선택적 부부별성제의 채용에 대한 질의를 되풀이하여 온 것이다.


 그리고 상기의 사회구조의 변화는 헤이세이 8년 이후 더욱 진행되었다고 보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있어서도 본건 규정의 개폐 조치는 취하여지지 아니하였다.


(3) 해외의 동향

 부부의 성씨에 대한 법제도에 대하여 해외의 동향에 눈을 돌려 보더라도 이하의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전제가 되는 혼인 및 가족에 관한 법제도가 다른 점이 있으나,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부부동성 이외에 부부별성이 인정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와 같이 부부동성제를 채택하였던 독일, 태국, 스위스 등의 많은 나라들에서도 최근 별성제를 도입하였고, 현시점에서 예외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부부동성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이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쇼와 60년대에 비준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에 근거하여 설치된 여자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헤이세이 15년 이후 반복적으로 우리나라의 민법에 부부의 성씨 선택에 관하여 차별적인 법규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고, 그 폐지가 요청된다고 하는 데에 까지 이르렀다.


(4) 정리

 이상을 종합하면 적어도 법제심의회가 법무대신에게 “민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안 요강”을 회답한 헤이세이 8년 이래 상당기간을 경과한 시점에서는 본건 규정이 헌법의 규정에 위반하는 것이 국회에 있어서도 명백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헤이세이 8년에는 이미 개정안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택적 부부별성제 등을 채용하는 등의 개폐 조치는 취하여지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본건 입법부작위는 현시점에서는 헌법상 보장된 또는 보호되고 있는 권리이익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제약하는 것으로서 헌법의 규정에 위반하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장기에 걸쳐 개폐 등의 입법조치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으로서, 국가배상법 제1조 제1항의 적용상 위법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본건 입법부작위에 대하여는 과실의 존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본건 입법부작위의 결과 상고인들은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본건에 있어서는 상기의 위법한 본건 입법부작위를 이유로 하는 국가배상청구를 인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판장 재판관 데라다 이쓰로寺田逸郎

재판관 사쿠라이 류코櫻井龍子

재판관 지바 가쓰미千葉勝美

재판관 오카베 기요코岡部喜代子

재판관 오타니 다케히코大谷剛彦

재판관 오하시 마사하루大橋正春

재판관 야마우라 요시키山浦善樹

재판관 오누키 요시노부小貫芳信

재판관 오니마루 가오루鬼丸かおる

재판관 기우치 미치요시木内道祥

재판관 야마모토 쓰네유키山本庸幸

재판관 야마사키 도시미쓰山崎敏充

재판관 이케가미 마사유키池上政幸

재판관 오타니 나오토大谷直人

재판관 고이케 히로시小池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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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27년(2015년) 8월 14일

내각총리대신 담화[각주:1]


[각의 결정]


 종전 70년을 맞이함에 있어, 지난 대전大戦으로의 노정, 전후의 행보, 20세기라는 시대를 우리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며 그 역사의 교훈 속에서 미래로의 지혜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00년도 전의 세계에서는 서양 여러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들의 광대한 식민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우위를 배경으로 하는 식민지배의 파도가 19세기 아시아에도 몰아쳐 왔습니다. 그 위기감이 일본에게 있어 근대화의 원동력이 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내걸고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러·일 전쟁은 식민지 지배에 있던 많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세계를 휩쓸었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민족자결의 움직임이 확산되었고, 그때까지의 식민지화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이 전쟁은 1천만 명이 넘는 전사자를 낳은 비참한 전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강하게 바라고 국제연맹을 창설하고, 부전조약을 낳았습니다. 전쟁 자체를 위법화하는 새로운 국제사회의 조류가 생겨났습니다.


 당초에는 일본도 보조를 같이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공황이 발생하고, 구미 여러 국가가 식민지 경제를 연결시킨 경제의 블록화를 진행시키자 일본경제는 크나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은 고립감이 심화되자 외교적, 경제적인 경색을 힘의 행사에 의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국내의 정치시스템은 이를 저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본은 세계의 대세를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만주사변, 그리고 국제연맹의 탈퇴. 일본은 차츰 국제사회가 장절壯絕한 희생 위에 쌓아올리고자 했던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자'가 되어갔습니다. 나아가야할 침로針路를 그르쳐 전쟁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70년 전. 일본은 패전했습니다.


 전후 70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목숨 앞에 깊이 고개를 숙여 통석의 념을 표하는 동시에 영겁의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앞선 대전에서는 3백만 여의 동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고, 가족의 행복을 빌면서 전장에서 산화한 분들. 종전 이후 혹한의, 또는 작열의 먼 이국 땅에서 굶주림이나 병으로 괴로워하다 돌아가신 분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서의 원폭 투하, 도쿄를 비롯한 각 도시에서의 폭격, 오키나와에서의 지상전 등에 의하여 많은 시민들이 무참히도 희생되었습니다.


 교전국들에서도 장래있는 젊은이들의 목숨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사라졌습니다.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의 여러 섬 등 전장이 된 지역에서는 전투만이 아니라 식량난 등에 의하여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희생되었습니다. 전장의 뒤에는 깊이 명예와 존엄이 상하게 된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우리 나라가 주었던 사실. 역사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인생이 있고, 꿈이 있으며,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아로새길 때, 지금도 말을 잃고, 그저 단장断腸의 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토록 귀중한 희생 위에, 현재의 평화가 있습니다. 이는 전후 일본의 원점입니다.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하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이제 두 번 다시 써서는 안 됩니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의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난 대전에서의 깊은 회오悔悟의 념과 함께 우리 나라는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만들고, 법의 지배를 존중하며, 한결같이 부전의 맹세를 견지하여 왔습니다. 70년간에 이르는 평화국가로서의 발걸음에 우리들은 조용히 긍지를 가지고서 이 부동의 방침을 앞으로도 관철해 가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하여 반복하여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뜻을 표명하였습니다. 그 마음을 실제의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의 나라들,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인 아시아의 사람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고, 전후 일관하여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힘을 다해왔습니다.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금후에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이 어떠한 노력을 다하더라도, 가족을 잃은 분들의 슬픔, 전화에 의하여 도탄의 아픔을 느낀 분들의 괴로운 기억은 앞으로도 결코 나아지는 일이 없겠지요.


 그렇기때문에 우리들은 가슴 속에 남겨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후, 6백만 명이 넘는 귀환자가 아시아 태평양의 각지에서 무사귀환할 수 있었고, 일본 재건의 원동력이 된 사실을. 중국에 내팽겨쳐진 3천 명 가까운 일본인의 자녀들이 무사히 성장하고, 다시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게 된 사실을. 미국이나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의 포로 출신의 여러분이 오랜 세월동안 일본을 방문하고, 서로의 전사자를 위하여 위령을 계속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쟁의 고통을 모두 느낀 중국인의 여러분이나, 일본군에 의하여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은 포로 출신의 여러분이 그토록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마음의 갈등이 있고,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그 점을 우리들은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관용의 마음에 의하여 일본은 전후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 70년의 이 기회를 맞아, 우리나라는 화해를 위하여 힘을 다한 모든 나라들,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바야흐로 인구의 8할을 넘어섰습니다. 그 전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리고 그 다음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들 일본인은 세대를 넘어서 과거의 역사에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로 넘겨 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들 부모, 그리고 그 부모 세대가 전후의 허허벌판, 빈곤의 밑바닥 속에서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들 세대, 나아가 다음 세대로 미래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선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함께 적으로 치열하게 싸웠던 미국, 호주, 구미 여러 국가를 비롯한 정말로 많은 나라들로부터 은혜와 원수를 넘어선 선의와 지원의 손길을 뻗어준 덕분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들은 미래로 전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나가며,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힘을 다한다. 그러한 크나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가 막다른 길을 힘에 의하여 타개하고자 했었던 과거를, 이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어떠한 분쟁도,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힘의 행사가 아니라 평화적·외교적으로 해결하여야 합니다. 이 원칙을 앞으로도 지켜 나가며 세계의 여러 나라에 호소해 나가겠습니다. 유일한 전쟁피폭국으로서, 핵병기의 불확산과 궁극의 폐절을 목표로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들은 20세기에 있어서 전시하, 많은 여성들의 존엄이나 명예가 깊이 침해된 과거를, 이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이러한 여성을 위한 마음에 항상 다가가는 나라가 되고자 합니다.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는 세기로 만들기 위하여 세계를 리드하여 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경제의 블록화가 분쟁의 싹을 키운 과거를, 이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어떠한 나라의 자의에도 좌우되지 않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열린 국제경제시스템을 발전시키고, 도상국 지원을 강화하며, 세계의 더 큰 번영을 견인해 나가겠습니다. 번영이야말로 평화의 초석입니다. 폭력의 온상이 되는 빈곤에 맞서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의료와 교육,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한층 힘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들은 국제질서에의 도전자가 되었던 과거를, 이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기본적 가치를 흔들림 없이 견지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손잡고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치를 높이 걸고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지금까지 이상으로 공헌해 나가겠습니다.


 전후 80년, 90년, 나아가 100년을 향하여 그러한 일본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나간다. 그러한 결의입니다.



헤이세이 27년(2015년) 8월 14일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安倍 晋三



전후 70년의 아베 담화 ― 무엇을 위하여 냈는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담화인가.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2015.8.15. 사설)


 아베 수상의 담화는 전후 70년의 역사 총괄로서 매우 불충분한 내용이었다.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 반성과 사과. 아베 담화에는 확실히 국제적으로도 주목된 몇 가지 키워드는 포함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참략하고 식민지 지배를 했다는 주어는 애매해졌다. 반성과 사과는 역대 내각이 표명하였다며 간접적으로 언급하였다.


 이 담화는 낼 필요가 없었다. 아니, 내지 말아야 했다. 다시금 강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 「무라야마」 이전으로 후퇴


 담화 전체를 통해 느낀 것은 스스로나 지지자의 역사관과 사실의 무게와의 절충에 고심한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으로 정착해 온 전후 50년의 무라야마 담화의 최대의 특징은 과거의 일본의 행위를 침략이라고 인정하고, 그 반성과 아시아의 여러 국민에게의 사죄를 솔직히 말했다는 점이다.


 한편 아베 담화에서 침략을 언급한 것은 다음의 대목이다.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하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이제 두 번 다시 써서는 안 됩니다."


 그 자체, 물론 실수는 아니다. 그러나 수상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에서 분명히 후퇴하고 있다.


 일본의 대륙으로의 침략에 대하여는 수상의 사적 간담회도 보고서에서 명기하고 있다. 참략이라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침략적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등으로 인정해 온 무라야마 담화 이전의 자민당 수상의 표현에서도 후퇴하고 있다.


 사과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수상은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리고 그 다음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워서는 안 됩니다."라고 언급했다.


 분명 국민 가운데에는 언제까지 사과를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감정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이나 한국이 사죄를 계속 요구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정부로서 반성이나 사죄를 표하더라도 각료들이 그를 의심케하는 발언을 반복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수상들이 참배한다. 신뢰를 해치는 원인을 일본에서 만들어 왔다.


■ 눈을 의심케하는 헛다리만


 사죄를 계속하고 싶지 않다면 국제사회에서 편향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받는 아베씨가 여기에서 깨끗하게 사죄하고, 국민과 아시아 여러 국민과의 사이에 놓인 악순환의 고리를 단숨에 끊는다. 그런 결단은 할 수 없었던 것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담화 발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진 것은 눈을 의심할만한 정권의 오락가락뿐이었다.


 아베씨는 수상으로 재등판한 직후부터 "21세기에 걸맞는 미래지향의 담화를 발표하겠다."고 표명. 무라야마 담화의 역사인식을 새로 칠하는 저의를 시사하여 왔다.


 그러한 수상의 자세에 중국이나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도 걱정이 깊어, 수상은 일단은 각의 결정 없는 개인적 담화의 색채를 강화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공식적인 정부 견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반발한 수상측근이나 공명당에서도 이론이 나오고, 다시금 각의 결정의 방침으로. 중요한 고비의 담화를 다루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헛다리뿐이다.


 그동안 국내만이 아니라 구미의 학자도 과오의 '편견없는 청산'을 호소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과반수가 '침략'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민의를 보여주었다.


 원래 각의결정을 하거나 말거나, 수상의 담화가 '개인적인 담화'로 끝날리는 없다. 일본 국민의 총의에 올라선 역사인식이라고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한 헛발질 끝에 침략의 책임도, 사과의 의사도 애매한 담화가 나온 꼴이다.


■ 정치의 본말전도


 국회에서의 수의 힘을 배경으로 강인하게 억지로 통과시킨다고 하더라도 많은 국민과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당연한 역사인식을 뒤집는 무리가 통할 리가 없다.


 수상은 미래지향을 강조했지만, 현재와 미래를 더욱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정리는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해결이 요구되고 있는데, 아직 남은 문제는 여전히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와 전몰자 추도의 문제이다. 아베 수상이 13년말 이래 참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교적인 마찰은 진정되었지만, 수상이 다시 참배한다면 금세 재연된다. 그런데 이 문제에 어떠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정치의 움직임은 매우 부족하다.


 위안부 문제는 해결을 향한 정치적 합의를 얻지 못했고, 국교가 없는 북조선에 의한 납치문제도 진전되지 않았다. 러시아와의 북방영토문제도 암초에 걸려있다.


 낼 필요가 없는 담화에 노력을 들인 끝에 전쟁의 참화를 체험한 일본 국민이나 근린 여러 국민이 고령화하는 속에서 해결이 급한 문제는 제자리걸음이 계속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본말전도도 짝이 없다.


 그 책임은 수상 자신이 지지 않으면 안된다.




전후 70년 담화, 역사의 교훈 가슴에 미래를 열어가자

(요미우리 신문読売新聞, 2015.8.15. 사설)


 ◆반성과 사과의 마음을 보였다◆


 앞선 대전에의 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본의 진로를 명확히 보여주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후 70년의 아베 수상 담화가 각의결정되었다.


 담화는 일본의 행동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래를 말하는데 역사인식을 제대로 제시하는 것이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기대를 높힌다.


 수상담화에는 키워드인 '침략'이 명기되었다.


 ◆「침략」 명확화는 타당하다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하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이제 두 번 다시 써서는 안 됩니다."라는 표현이다. "지난 대전에서의 깊은 회오悔悟의 념과 함께 우리 나라는 그렇게 다짐했습니다."라고도 쓰고 있다.


 수상이 '침략'을 명확히 인정한 것은 중요하다. 전후 50년의 무라야마 담화, 전후 60년의 고이즈미 담화의 견해를 이어받은 것이다.


 1931년의 만주사변 이후의 구 일본군의 행동은 침략 자체이다. 자위 이외의 전쟁을 금지한 28년의 부전 조약에도 위반한다.


 특히 31년 10월의 관동군에 의한 중국 동북부·진저우錦州 공격(역주:만주사변을 의미)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무경고의 공습으로, 헤이그 육전 규칙에 반한다. 공습은 상하이, 난징, 충칭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비전투원 사망자를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일부 군인의 독주를 허락한 비참한 전쟁의 발단을 일본이 만들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상은 기자회견에서 "정치는 역사에 겸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 외교적 의도에 의하여 역사가 왜곡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했다.


 핵심을 찌른 발언이다.


 '침략'의 객관적 사실을 인정한 것은 자학사관이 아니고, 일본을 깎아내리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국제사회의 신뢰를 높이고 '역사수정주의'라는 일보의 의혹을 푸는 일도 될 것이다.


 담화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의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는 표현을 언급했다.


 담화는 국내외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깊이 고개를 숙여 통석의 념을 표하는 동시에 영겁의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라고 적었다.


 독일 수뇌의 말을 일부 답습한 것으로 무라야마 담화 등의 "사과드리는 마음"(お詫わび)에 상당하는 표현이다. 수상의 진지한 마음이 충분히 전해진다.


 담화는 일본이 지난 대전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뜻을 표명하였습니다."라고 하여 무라야마 담화 등의 견해에 다시금 언급했다. 더욱이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금후에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라


 이번 표현으로는 납득하지 않는 일부의 근린 여러 나라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것은 안 될 것이다.


 구미 여러 나라를 포함해 국제사회 전체를 향하여 현재의 일본의 생각을 알리고, 이해를 넓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베 담화가 전후의 일본에 손을 뻗어준 구미와 중국 등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명한 것은 타당할 것이다.


 "전시하, 많은 여성들의 존엄이나 명예가 깊이 침해된 과거를, 이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라는 표현은 위안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한국에 대한 배려이다.


 담화가 표명한 것처럼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는 세기로 만들기 위하여 세계를 리드하여 나가겠습니다."라는 것이 지금 일본에 요구되고 있다.


 담화는 전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세대에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워서는 안 됩니다."라고도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에 일정한 구분을 짓고, 자자손손에까지 사죄행위를 강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이나 한국에도 이해와 자제를 구하고 싶다.


 ◆차세대의 사죄 피하고 싶다


 수상은 기자회견에서 담화에 대하여 "가능한 많은 국민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유의했다."고 말했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다양한 생각은 이번 담화에서 국내적으로는 분명히 정리, 집약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담화는 일본이 금후 나아갈 방향성에 관하여 "국제질서에의 도전자가 되었던 과거"를 가슴에 새기고, 자유,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가치를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견지한다, 고 맹세했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걸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이러한 일본의 자세는 구미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로부터 폭 넓게 지지받고 있다.


 '역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서, 일본의 장래를 개척해가고 싶다.


  1. 원문은 일본어임. 주한일본대사관 가번역은 http://www.kr.emb-japan.go.jp/what/news_20150814.html를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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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아니 사실 편중되고 좁은 생각을 처리할 프로세스가 없어서. 페이스북은 내팽겨쳐버리고 결국에 남는 것은 어물전뿐이다.

# 기왕 글을 쓰고 앉았으려니 농대 개교 십주년과 어선조 개국 십년이 언젠지 가물가물타.

# 아. 서대문에 도저히 차를 댈 곳이 업스니 이내가 안타까히 그져 챠를 두고서는 두발로 우둑허니 걸어다닐 뿐이다. 그런데 걷다보니 하나의 길에도 여러가지 경로가 잇스니 이 바리에이션이 대단하다는 것시다. 내가 이것저것 환승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환승 코오디네이터라는 것이 잇서서 백셩들이 환승할 적에 너는 이것슬 타라 또 너는 저것슬 타라 하는 사람이 잇서서 매우 편케 하리라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차를 팔아버릴 기회를 맞아 1종 대형이 따고 싶어졌다. 내가 근래에 뻐쓰를 타고 잇노라면 이 후사경, 세칭 빽미라를 보질못허니 차선을 바꿀적마다 흠칫흠칫하고 놀라는 것이 아주 가관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뻐쓰를 모는 기사님들이 참으로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여 나도 뻐쓰를 몰면 어떻겠나 하다가, 또 문득 택시를 몰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택시란 것은 아동방 조선의 몰염치하고 주옥같은 운전기법을 모아다가 만든 흉포한 짐승이나, 그것슬 타고 잇걸랑 조선의 미친놈들을 다 만날 수가 잇고 또한 신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시와 관련한 논문일랑 쓰는 척을 하고 택시회사에 위장취업을 해볼까 고민을 하였던 것이다.

# 오늘 조주기능사 실기시험을 공부일랑 하지 않고서 쳤노라니 무론 개뿔쥐뿔을 모르고 멍하니 서있다가 왔노라.

#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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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보
    2015.06.12 21:16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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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찬가(부제 : 돌파하라 최첨단을)


무엇이나 마음만 먹으면 생산표준에 따라 만드는

삼성전자 기계공업의 자랑 우리식 갤럭시S

갤럭시는 삼성전자의 위력 갤럭시는 안드로이드 본 때

회장님 가리키는 길따라 돌파하라 최첨단을

아 아리랑 아리랑 민족의 자존심 높이

과학기술 강국을 세우자 어플이 파도쳐온다.


지식경제 시대인 오늘날 떨어지면 기술의 노예되리

첨단으로 세계향해 나가는 우리식 갤럭시노트

갤럭시는 삼성전자의 위력 갤럭시는 안드로이드 본 때

회장님 가리키는 길따라 돌파하라 최첨단을

아 아리랑 아리랑 민족의 자존심 높이

과학기술 강국을 세우자 어플이 파도쳐온다.


애국으로 심장이 불파면 점령못할 첨단은 없어라

구글으로 백배해진 힘으로 모든 것에 패권을 쥐자

갤럭시는 삼성전자의 위력 갤럭시는 안드로이드 본 때

회장님 가리키는 길따라 돌파하라 최첨단을

아 아리랑 아리랑 민족의 자존심 높이

과학기술 강국을 세우자 어플이 파도쳐온다.


갤럭시S3를 쓰며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 소비자로서 갤럭시 찬가를 써 보았다.


(2013년 2월 6일 오후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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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민석
    2016.03.02 10:51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웃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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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놀이, 세칭 고스톱 놀이는 수자(數字)를 익히고 또한 사계절의 풍광을 즐기는데 알맞는 놀이문화이다.


왜색이 짙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더러 있으나, 이는 곧 무지몽매한 자이다. 지난 조정 이래로 조선에 들어온 것이 마령서와 감자, 고추, 남령초를 비롯하여 무지기로 많은데 이 가운데 조선에 그야말로 딱 들어맞아 특화된 것이 고추를 비롯한 것이며 그 가운데 화투가 있다. 왜색이 짙다면 돈까스를 먹지말라.


여하간에 화투에는 사계절 풍광이 그대로 들어있고, 또한 패마다 그 달의 수자로 삼으니 두뇌계발에 큰 도움이 된다. 화투를 가지고 하는 놀이에는 여럿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 섯다는 근래에 들어 인터네트로 하는 놀음을 가지고 널리 퍼졌으나 실상 현실에서 패를 떠보면 치는 자가 많지 않다. 고래에는 민화투 놀이가 성하였으나, 곧 고스톱 놀이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 고스톱 놀이에도 인터네트 놀음을 가지고 그야말로 개나소나 고스톱 놀이를 할 수 있다 자처하게 되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터네트 놀음은 쾌감의 극대화를 위하여 패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또한 어거지로 패 조합을 만들어내 실상에서는 있기 힘든 패의 조합이 부지기수로 나오게 되니 곧 사람들이 복표나 녹도복표와 같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많은 고민을 하지 않게 만드니 그야말로 해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화투놀이의 규칙 또한 신묘하기 그지없는데, 또한 지방과 시대에 따라 규칙이 다르니 이른바 세간에서 화투놀이 하기 전에 루-울 미팅(rule meeting)을 가지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내 유소년기에는 분명 7끗을 쌍피로 쳐주기도 하였고, 멍텅구리니 총통이니 하는 규칙이 없었다. 또한 그 이후에 본 일이 없는 로오얄피(royal皮)라는 규칙이 있었는데, 이는 9쌍피 오동쌍피 비쌍피의 3종을 모으게 되면 상대방의 피 한 장을 뺏어올 수 있는 기능을 하였다. 내가 이참에 생각이 나 구글에 쳐보았더니 로오얄피라는 것이 한 건도 뜨지 아니하니 확실히 기묘한 규칙임에 틀림이 없다.


여하간 화투놀이는 두뇌를 계발하고 철을 알게 하는 등 큰 효능이 있으나, 이 또한 해악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사행성으로 이용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으나, 실상 생각해보면 민중의 곁에서 고래로부터 이어져 온 민속놀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행성 놀음으로 이용되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인터네트 고스톱 놀이에 이어진 것이지, 결코 민중의 놀음이 그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럼프 등으로 하는 놀음이야말로 더욱 사행적이다.


최근에는 스마아트폰(Smart Phone)이란 것에도 놀이 응용프로그람이 범람하는 가운데 이러한 화투놀이 프로그람도 많이 출시되었으나, 모두 이용자의 돈을 노리는 쓰레기 수준의 응용프로그람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고래로 본 가운데 프로그람으로 사실상 가치가 있는 것은 비쥬얼 고도리 프로그람 정도 밖에 없던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으나, 야심한 시각에 깊이 생각에 잠기어 근래에는 젊은 사람들이 화투도 못치고 술도 못마시고 담배도 못피우면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사나 싶어 여담으로 몇 자 적어두었다.


(2013년 2월 13일 오후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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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이돌 팬덤문화에 관하여는 최근 5년 이래로 드디어 유의미한 연구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다양한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의 접점이나 사례 연구를 비롯하여 팬 당사자의 인터뷰 연구라든지, 그리고 이러한 연구와 함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것은 다양한 여성지향적 문화의 성장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최근에 있어서는 여성향 동인게임의 플레이어에 대한 인터뷰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남성향 문화들이.이러한 의미있는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과 같다. 남성향 아이돌 팬덤은 규합과 결속 이후에 파생되는 문화적 성장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은 일본의 사례에서도 동일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성향 문화는 소비지향적이고, 여성향 문화는 소비지향적인 동시에 생산지향적이기도 하다. 호야 귀엽다.


(2012년 9월 24일 오전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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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감자 깎는 칼이 다섯 개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한 쪽엔 파채칼이 달리고 반대편으론 감자도 깎고 싹눈도 도려내고, 혹은 하나는 강판이 달려있기도 하는 등 대개 기능성이 우수한 것들이다.


그런데 나는 도통 이것들을 쓰질 못한다. 처음 사고는 한 두어번 써보았지만 역시 평상에는 숟가락으로 감자를 깎는다. 이것은 내가 촌사람이요 인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남새는 그 껍질에 양분이 많다고들 한다. 감자칼을 쓰게 되면 껍질이 너무 두꺼워 깎은 것이 더 많은 날도 있다.


실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대개 신선한 감자는 숟가락을 가져다대고 슥슥 긁으면 금세 껍질이 벗어진다. 이것이 오래된, 묵은, 신선하지 않은 감자인 경우에는 오히려 숟가락이 감자 속으로 파묻힐지언정 더욱 까지지 않는다. 바로 숟가락이 감자의 선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감자를 깎는 숟가락도 요령이 있다. 그 숟가락 머리가 넓고 판판하고 넙대대하며, 모서리가 칼까지는 아니고 썰리는 정도는 아니나 날카로워야 한다. 내가 이런 숟가락을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데, 밖에선 본 바가 없다. 그야말로 숟가락이 옛것인 셈이다.


여담으로 숟가락으로 감자를 벗기듯, 마늘을 빻는 때에도 믹서기로 드륵드륵 하는 것보다는 절구로 빻는 것이 훨씬 식감이 좋고 보기도 좋다. 먹어보면 안다.


이번에는 감자를 함부르스(가명)에서 샀다. 고래로부터 진노마트(가명)가 농수산물이 신선하기로 이름높았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선도가 좋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게다가 농수산물 이외에는 딱히 대단한 강점이 없던 차에 함부르스에서는 배달도 해주고 좋은 물건으로 골라준다기에 주문했는데, 정말로 물건이 좋다.


밥하다 든 생각을 몇 자 남기어둔다. 이 글의 제목은 감저시설(甘藷匙說) 정도면 적당하겠다.


(2013.08.26.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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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교자(匾餃子)는 조선국 달구벌의 고유한 음식이다. 너른 만두피에다 약간의 소를 싸서 납작하게 접어, 기름에 지져 먹었으므로 편교자, 이른바 납작만두라고 하였다.


본디 교자의 형태는 소가 많은 것을 으뜸으로 쳤는데, 이는 성리학에서 이르기를 인간의 심성에 모든 진리가 이미 들어가 있는 것으로, 만두 또한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편교자를 일컬어 이단의 음식이오, 기름덩어리 밀가루부침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경도(京都)에서 더욱 심하였는데, 속이 개미눈물만큼 들어있어 가히 맛없는 경상도의 음식이라 할 만 하다며 비웃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본시 교자가 중국의 음식이라고 하나, 편교자는 교자와 형태가 전연 다른 바를 상고한다면 기씨가 조선에 와서 왕도를 펼치듯, 편교자야 말로 조선만두의 새로운 발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하간 이 편교자의 기원은 한국동란 시절에 먹을 것이 없어서 먹었다거나, 60년대에 중국 교자가 너무 기름져서 야채를 넣어 만들었다는 양 설이 있다. 그러나 이미 60년대에 들어서는 기름을 적게 쓰긴 하였으나, 편교자가 사실상 널리 퍼져있었으므로 후설은 취하기 곤란하다. 또한 이 편교자는 기름에 부치는 것이 중요하므로 후설은 더더욱 취하기 힘들다.


편교자의 양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인다. 원형에 가까운 것은 겹친 교자를 떼지 아니하고 기름에 두루두루 부치는 것이다. 이는 겉과 속이 모두 말랑말랑하여 가히 겉과 속이 내리신 그대로이므로 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후기에 들어서는 서문시장 일대에서 교자를 대강 떼어 기름에 두루두루 볶듯이 부치는 것이다. 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그대로이므로 군자가 경이직내 의이방외하는 것과 같다.


나는 떼서 부치는 것이 더 좋다.


+ 편교자의 양태와 관련하여 원형이라고 지적한 것은 옛 모습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고로 원래 납작만두는 떼어 기름에 적셔 부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2013.09.21.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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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중교통에서 통화하는 사람이 너무 싫다. 그제는 뻐-쓰에서 가족회의를 하는 냔을 보았는데, 왜 가족회의를 집구석에서 안하고 뻐-쓰에서 하는지 모르겠다.


여하간 금조에는 웬 민주애국지사냔이 아침댓바람부터 전철 플래트폼에서 핏대를 올리면서 삼청교육대를 부활시켜야함을 통화하였는데, 곧 전차에 올라타서도 그 웨침을 멈추지 않았으니 저냔부터 삼청교육대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과 같이 일어났다.


하여간 금일은 무슨 날이긴 한가본지 전차가 늦게 도착하고는 사람도 미어터지는 판국에 웬 갸날픈 처녀 하나가 괴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다 접어놓고 문을 닫으며 타는게 아닌가. 나는 이때에 이 전차의 무서움을 알아채고 내렸어야 할 것을.


본디 1호선을 타본 사람이라면 알겠으나, 인천행은 서울 이북에서 발차하여 남하하고, 천안신창 및 수원병점행은 성북에서 발차하거나 청량리에서 발차하여 남하한다. 대개 수원병점행이나 천안행을 타거든 할랑한 분위기로, 혹 때로는 앉아오는 기회가 있는데 이번에는 열차가 몽조리 지연되는 분위기라 어쩔 수 없이 인천급행을 타게된 것이 그지같은 전말의 시작이었다.


이 인천행이란 것은 타고나거들랑 일단 회기역에서 1할이 빠지고, 청량리에서 3할이 빠지고, 그외 제기동부터 종로오가까지 쪼르르륵 빠지다가 종로삼가에서 다시 삼사할이 빠진다. 물논 그 사이에 계속 들어차기는 하지만, 웬만하거들랑 회기부텀은 신문지 쪼가리 한 장 볼 수는 있는 환경이 된다.


그런데 금일은 회기역에서 그 갸냘픈 처녀가 문을 닫고 타더니, 청량리에서는 빠진 3할 대신에 새로운 3할이 타고는 이제는 웬 거구의 사내가 문을 닫고 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중간중간에 분명히 타는 자보다 내리는 자가 많은데 열차혼잡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 분명히 배후세력이 장악하고 있음이 틀림없음을 느꼈다.


그리고는 종로삼가에 이르러, 청량리에서의 그 거구만한 두 사내가 내리는 문을 장악하고는 조금이라도 내리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금일의 탑승사정은 곤란의 연속이었으니, 곧 종로삼가에서 대략 륙할이 내리지않았나 싶을 정도로 혼란이 그지없었다. 그 두 사내 가운데 한 사내는 곧 밀려났으나, 한 사내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려다 결국 말미에 문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야말로 유대 백성이 애굽을 떨쳐일어나는 풍경과 몹시 흡사하였다.


그 다음에는 3호선을 타러갔더니, 곧 열차가 떠나려하므로 사람들이 맨 마지막칸(10-4)를 통하여 대거 탑승하여 제자리를 찾아가니, 이는 또한 유대백성이 출애굽을 하는 광경과 같이, 전차를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새가 흡사 정병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보았던 광경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몇 자 술하여 놓는다. 아 빠진 것이 있다. 종로삼가 일호선에서 삼호선 내려가는 길이 곧 두 줄짜리 에스카레이타인데, 이 풍경이 또한 자못 대단하다. 특히 금일의 사정은 극심하였더니, 꼭 일단 운전하면서 대가리부터 들이미는 조선사람의 습성과 극히 똑같더라. 오늘의 이야기를 출애굽설이라 이름한다.


(2013.11.26.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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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에 한식대첩 9편을 몰아보고, 오늘(2013.12.2.) 한식대첩 마지막 한 편을 다보았다.


음식이란 것은 향토의 환경이고 문화이고 역사이다. 근래에야 사통팔달에 조선팔도가 반나절지간이라 그 색이 옅어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살아보면 그 음식이 그 동네의 최고 문화이다.


최근에는 서울음식하면 색이 없다. 황교익선생과 정은숙여사는 서울을 먹다를 통해 근대 이후의 서울음식을 풀어낸 바가 있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근대사의 음식이지, 서울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본디 서울사람을 서울깍쟁이라 하였는데, 그 말이 음식에 가장 잘 드러난다.


원래 서울사람을 깍쟁이라 하였으니 곧 서울의 품성이다. 개수구에 고춧가루 한 점도 버리지 않는 것이 서울의 습성이지만, 곧 손대접만은 융숭하였다. 또 우거지 먹고도 이를 쑤신다 하였으니 서울깍쟁이의 습성이 그러하다.


한식대첩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그 지역의 재료나 풍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지역음식버라이어티 프로그람이었다. 제주도가 그러하였고, 전남이나 경남이 그러하였고, 특히 경북이 제일 맞았다. 시속에 이르기로는 경상도 음식이 최고 맛이 없다고 하였는데 가장 어리석은 소리다. 사실 부산음식은 맛이 없는 것이 맞다. 특히 부산 생탁은 그게 막걸리냐. 하여간 경상도 음식이 맵기만 하다는 우민이 있는데, 사실 경상도는 매운걸 제일 잘하는거지 매운거만 만드는게 아니다.


돔배기가 나온 것이 그러하였고, 특히 마지막화에는 포항 문어와 안동 간고등어, 안동 참마가 나왔는데 사실 다른거 썼으면 오히려 이겼을거 같은데.... 하여간 서울깍쟁이나 강원도, 경남의 습성이 그대로 드러난 수작이다.


며칠전에 집에 가는길에 이문동 철물?전기? 점포 앞에 노상좌판이 깔린 것을 보았다. 양미리와 미역, 귤이 놓인 안바란스한 좌판이더라. 양미리가 반가워 보고있자니 철물점에서 난생 처음보는 사내가 나와 묻는 것을 보니 아마도 좌주인가 보았다. 이 양미리 한 두름이 얼마요 하니 삼천오백원이라 하였다. 서울은 물산의 집합이라, 경상도에서도 두름에 오천원씩 할 때가 있었는데 서울에서 만나니 반갑기 짝이 없었다. 이것 나중에 오면 있소 하니 자기도 잘 모른단다. 다음에 오겠소 하고 발길을 돌렸다.


보통 경상도 별미하면 과메기를 떠올리지만, 양미리에 비하면 찌끄레기에 불과하다. 양미리 한 두름 스무마리에 오천원 안짝으로 사는데, 그 중 으뜸은 알을 잔뜩 품은 것이다. 굴비와 같이 배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알을 품은 것이 있는데 곧 소금을 쳐 구워먹으면 천하별미가 따로 없다.


내가 일전에 이 양미리 공부를 해보려고 샅샅이 뒤져보았는데, 혹자는 양미리가 곧 까나리라 하고, 혹자는 이 양미리와 까나리는 다른 종으로 학명까지 다르다 주장하는데 어느 쪽이 진실한지는 아직도 분간을 못하겠다. 하여간 겨울에 양미리에 막걸리 한 잔하면 죽인다.


한식대첩 꼭 봐라, 두 번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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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생각한 평화운동> (링크)



우리는 자마 시(座間市)에 사는 주부, 두 아이의 어머니인 다카노스 나오미(鷹巣直美) 씨의 목소리에 동감하여 이 '헌법 9조에 노벨 평화상을'의 서명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세계 속의 나라가 무력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의미가 없고, 여기에 쓰는 것도 매우 큽니다. 일본처럼 9조를 가진 나라가 늘어나야 합니다. 이를 생각하면 9조가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많은 나라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9조를 어떻게 하면 세계 속에 널리 퍼뜨릴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이러한 움직임은 하나의 큰 실마리가 되리라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2013년 8월에 실행위원회가 발족하였습니다. 실행위원회는 빠른 성장과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다음은 서명내용에서 나타난 의견입니다.

o 굉장한 발상에 감동했습니다. 개헌을 향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아베 내각,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지쳤을 때 이 서명을 보고 '이런 방법도'라며 감탄했습니다. 꼭 협력하고 싶습니다.

o 솔직히 말하면 헌법 9조에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지만, 현 시점에서 평화헌법을 지키는 운동의 하나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o 노벨 평화상이 수여될 경우 일본국민의 대표자가 아베 수상이라는 모순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아베 수상은 평화를 지키는 운동에 매일 수 밖에 없으니 환영할 만한 모슨이라고 생각한다.

o 노벨 상은 신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평화를 지킨다는 의미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서명에는 협력한다. 인터넷은 신용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쓴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9조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도록, 바랍니다.

o 의표를 찌르는 이야기라 시비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9조를 지켜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국민투표가 9조를 지켜낼 때 노벨상을 영광스럽게 받고싶습니다.

o 나는 89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도 적은 기간이나마 경험했습니다. 내 어린시절부터 쇼와 20년(1945년)까지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약 70년 가까이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지금 나라의 지도자나 국회의원의 머리 속이 유감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평화는 더욱 더 오래 이어나가야 합니다. 평화헌법 꼭 지킵시다.


- 경향신문 '아베 헌법 개정 움직임에 맞서는 일본 주부 “평화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주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031541561&code=9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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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임금 수준만으로 종사자를 평가절하하는 자체가 한국인들의 왜곡된 인식, 한국 문화의 부적절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김원정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http://m.donga.com/3/all/20140121/60294764/3


1. "대낮에 여당 대표를 찾아가 대 놓고 '자리를 봐 달라'고 칭얼댄 최 사장의 용기" (논설위원 최영해가 최연혜 사장에게)

http://m.donga.com/3/all/20140121/60294593/3


2. 커피믹스가 다 떨어져가서 손님 오시면 드리게 남겨두고 커피를 타다가 느꼈다. 이 커피믹스란 것은 조선의 산물이다. 무론 커피 설탕 프림이 조선의 발물은 아니지만, 커피믹스가 조선의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혹자는 예전에 조선은 인스탄트 커피를 커피라 부르고 커피는 원두커피라고 부르는 나라라 원두커피값이 비싼 것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원두커피를 원두커피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인스탄트 커피를 파는 옛 다방만 그러하고 또한 원두커피값도 크게 내려갔으니 그 말이 맞는듯도 하다.


2-1. 내가 근대 한국 음식문화사의 삼대 전환점이자 사건으로 꼽는 것이 아지노모도(그리고 미원), 커피믹스 개발, 새송이버섯 개발이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은 헐한 값으로, 표준적인 맛을, 폭 넓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2-2. 일전에는 냉장고를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이라고 하던 철학자도 있었는데, 사실 국을 끓이건 뭘 하건 육수를 내니 간을 맞추니 하는 일이 간편한 작업이 아니다. 이러한 일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단축해야 하고, 먹는 사람의 취향이 표준화되어야 하는데... 이걸 단숨에 해결한 것이 미원이다. 근대 역사에서 인공조미료의 대명사는 미원이 되었고, 이것이 가져온 해방이야말로 크나크다하지 않을 수 없다. 폐해에 대해서는 나 말고도 많이 얘기하니까 생략.


2-3. 커피믹스는 조선 사람의 삶을 한껏 끌어올린 대작이다. 인스탄트 커피나 프리마나 물론 다 좋은 물건이지만, 커피믹스는 그 보존성과 간편함을 더욱 끌어올린 그야말로 창조경제다. 생각해보니까 커피믹스가 진짜 창조경제네. 커피를 스틱으로 만들어놓으니 비율도 마음대로고 이지컷도 만들었고. 이 커피믹스 덕에 전 국민이 바리스타가 되었고, 어디 계곡이든 산이든, 지리산 꼭대기든 에베레스트 꼭대기든 가서 물만 부으면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다.


2-4. 창조경제얘기가 나와서... 어떻게보면 남양유업의 행위도 어두운 창조경제가 아닐 수 없겠다. 처음에는 토종커피라더니 이제는 카제인나트륨을 빼버리고, 최근에는 또 인산염을 빼버렸다. 그만큼 커피가 조선사람에게 중요하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그러면 아예 커피를 뺀 커피믹스도 한 번 만들어보든가 등신들이.....


2-5. 커피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계속 쓰다보니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까먹었다. 나머지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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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nunmankm.tistory.com BlogIcon 버크하우스
    2014.07.14 11:25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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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아 네 어디를 방황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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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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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nunmankm.tistory.com BlogIcon 버크하우스
    2014.07.14 11:20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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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들고 봤더니 노선 번호가 없네 뀨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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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경찰예비대가 설치된 것을 두고 일본사회당을 대표로 하는 원고 스즈키 모사부로鈴木茂三郎는 1951년 4월 1일 이후에 이루어진 경찰예비대와 관련한 일체의 행위에 대하여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장을 최고재판소에 제출하였다. 원고는 일본국헌법 제81조가 최고재판소에 헌법재판소의 성격을 부여하였으며, 그에 대하여는 제1심이면서 종심의 관할을 부여하였으며, 더욱이 입법부의 소수야당의 원고는 원고적격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최고재판소는 1952년 10월 8일, 최고재판소 대법정 전원 일치로 부적법각하하였다. 최고재는 일본의 재판소가 수행하는 것은 사법권이며, 사법권을 행사함에는 구체적인 소송의 제기를 필요로 하므로, 이 사건은 구체적인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으므로 헌법 및 기타 법률 등에 판단을 내릴 권한은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사법권의 범위 내에서 하급재판소도 위헌입법심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역으로 이번과 같은 재판은 어떠한 재판소도 재판권을 갖지 아니한다면서, 경찰예비대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경찰예비대 위헌소송 원문

일본국헌법에 위반하는 행정처분 취소 청구사건

최고재판소 쇼와 27년 (マ) 제23호 / 1952년(쇼와 27년) 10월 8일 대법정 판 (民集6巻9号783頁)



원고 스즈키 모사부로

   대리인 이노마타 고조猪俣浩三 외 5명


피고       국가(國)

   대표자   법무대신 기무라 도쿠타로木村篤太郎

   법정대리인 오자와 후미오小沢文雄 외 1명

   대리인   이와타 주조岩田宙造 외 2명



□ 주    문


 본건 소를 각하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 사    실


 원고 소송대리인은 청구취지로 “쇼와 26년 4월 1일 이후 피고가 행한 경찰예비대 설치 및 유지에 관한 일체의 행위(행정행위는 물론 사실행위, 사법상의 행위 외에 예비대의 설치유지에 관한 법령규칙의 일체를 포함한다. 별지목록의 기재는 예시에 지나지 아니한다.)가 무효라는 것을 확인한다.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구하며 그 청구원인은 별첨 소장 중 청구원인 및 쇼와 27년 7월 16일자 준비서면기록과 같다.


 피고 소송대리인은 주문과 같은 뜻의 판결을 구하는 별첨 답변서 중 이유기재대로 주장하였다.



□ 이    유


 원고는 최고재판소가 일견 사법재판소의 성격을 가지는 것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 구체적인 쟁송사건에 관한 판단과 분리되어 추상적으로 또한 제1심이자 종심으로서 법률, 명령, 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권한을 가진다는 점에 있어서 사법권 이외의, 그리고 입법권 및 행정권의 어느 쪽의 범주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특수한 권한을 수행할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다.


 이 점에 관한 제외국의 제도를 보면, 사법재판소에 위헌심사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 이외에, 사법재판소에 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를 위한 특별한 기관을 두어 구체적 쟁송사건과 관계없이 법률, 명령 등의 합헌성에 관한 일반적·추상적인 선언을 하고, 이를 파기하여 그 효력을 잃게 만들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재판소에 현행 제도상 주어진 것은 사법권을 행사할 권한이고, 사법권이 발동하기 위하여는 구체적인 쟁송사건이 제기될 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 재판소는 구체적인 쟁송사건이 제기되지 아니하였는데 장래를 예상하여 헌법 및 기타 법률, 명령 등의 해석에 대하여 존재하는 의심논쟁에 관한 추상적인 판단을 내리는 권한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저 최고재판소는 법률, 명령 등에 관한 위헌심사권을 가지지만, 그 권한은 사법권의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 점에 있어서 최고재판소와 하급재판소 사이에 다른 바는 없는 것이다(헌법 제76조 제1항 참조). 원고는 헌법 제81조를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으나, 동조는 최고재판소가 헌법에 관한 사건에 대하여 종심적 성격을 갖는 것을 규정한 것이고, 따라서 최고재판소가 고유한 권한으로 추상적 의미의 위헌심사권을 가진다는 것과 함께 그러한 사건에 대해 배타적, 즉 제1심이자 종심으로서의 재판권을 가진다는 것을 추론할 수는 없다. 원고가 최고재판소재판관으로서의 특별한 자격에 대하여 주장하는 점은 특히 재판소법 제41조 제1항의 취지에 관한 것이라고 인정되나, 이 최고재판소가 합헌성의 심사와 같은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종심으로 판단할 중대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는 것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바이다.


 또한 최고재판소가 원고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법률, 명령 등의 추상적인 무효선언을 내릴 권한을 갖는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최고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법률, 명령 등의 효력을 다투는 일이 빈발하게 되어 최고재판소는 모든 국권의 위에 위치한 기관이라는 인식을 보이게 되어 삼권의 분립, 그 사이의 균형을 가지고 상호가 침범하지 아니하는 민주정치의 근본원리에 배치하게 될 우려가 없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우리 현행 제도 하에서는 특정인이 구체적 법률관계에 대해 분쟁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재판소에 그 판단을 구할 수 있는 것이고, 재판소가 이러한 구체적 사건과 분리되어 추상적으로 법률, 명령 등의 합헌성을 판단할 권한을 가진다고 하는 견해에는 헌법상 및 법령상 하등의 근거도 없다. 그리고 변론 취지에 따르면 원고의 청구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법률관계에 대한 분쟁에 관한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따라서 본 소송은 부적법하므로, 관련된 소송에 대하여 최고재판소만 아니라 어떠한 하급재판소도 재판권을 가지지 아니한다. 이에 따라 본 소송은 하급재판소에 이송하여야 할 것이 아니다.


 이상 이유에 따라 본건 소송은 부적법하므로 각하하고, 소송비용의 부담에 대한 민사소송법 제89조를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최고재판소 대법정(大法廷)

    재판장 재판관 다나카 고타로田中耕太郎

        재판관 사와다 다케지로沢田竹治郎

        재판관 이모야마 세이이치霜山精一

        재판관 이노우에 노보리井上登

        재판관 구리야마 시게루栗山茂

        재판관 마노 쓰요시真野毅

        재판관 고타니 가쓰시게小谷勝重

        재판관 시마 다모쓰島保

        재판관 사이토 유스케斎藤悠輔

        재판관 후지타 하치로藤田八郎

        재판관 이와마쓰 사부로岩松三郎

        재판관 가와무라 마타스케河村又介

        재판관 다니무라 다다이치로谷村唯一郎

        재판관 모토무라 젠타로本村善太郎


        재판관 다나카 고타로는 퇴관하였으므로 서명날인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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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 창설 및 우리나라의 종전·피폭 60주년을 맞아 한층 더 국제평화의 구축으로의 공헌을 서약하는 결의

国連創設および我が国の終戦・被爆60周年に当たり、さらなる国際平和の構築への貢献を誓約する決議


2005.8.2. 중의원


 국제평화의 실현은 세계 인류의 비원悲願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전쟁 등에 의한 참화가 끊이지 않는다.


 전쟁이나 테러리즘, 기아나 질병, 지구환경의 파괴 등에 의한 인명의 상실이 계속되고, 핵병기 등의 대량파괴병기의 확산도 걱정된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현실 속에서 본 원은 국제연합이 창설 이래 60년에 걸쳐 국제평화의 유지와 창조를 위하여 발휘한 예지叡智와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우리들은 이에 10년 전의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로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를 상기하며, 우리나라의 과거 한 때의 행위가 아시아를 시작으로 하는 다른 국민에게 준 다대한 고난을 깊이 반성하고, 새롭게 모든 희생자에게 추도의 성의를 바치는 바이다.


 정부는 일본국헌법에 나타나는 항구평화의 이념 하에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세계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고 핵병기 등의 폐절廃絶, 일체의 전쟁의 회피, 세계연방 실현으로의 길의 탐구 등 지속가능한 인류공생의 미래를 절실히 열어나가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이상, 결의한다.


헤이세이 17년(2005년) 8월 2일


 중의원은 2005년 7월 2일 오후의 본회의에서 전후 60년의 국회결의를 공산당을 제외한 자민, 공명, 민주, 사민 4당의 찬성으로 채택하였다.


 여당측에서 제시한 원안에 1995년의 전후 50년 결의에 명기된 ‘식민지 지배’나 ‘침략적 행위’라는 문언이 없는 것에 야당 측이 ‘내용이 후퇴했다.’고 반발, 조정을 거듭하였으나 공산당을 제외한 4당이 전후 50년의 국회결의의 내용을 상기한다는 표현을 추가하는 것에 의견이 일치하였다.


 자민당의 아베 신조 간사장대리나 납치의원연맹 회장인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을 결의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등 자민, 민주 양당의 10인 가까이가 표결 전에 본회의장을 퇴장, 공산당은 “전후 50주년 결의를 상기하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의 명확한 반성이 빠진 결의”라며 반대하였다.


60년 결의, 말을 넘어서 화해를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2005.8.3. 사설)


 이 10년 동안 무엇이 변화하였는가. 어제 중의원에서 채택된 '전후 60년'의 국회결의를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의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중의원 의장의 지시로 실현되었다. UN 창설이나 일본의 피폭으로부터 60주년을 맞아, "새롭게 국제평화의 구축에의 공헌"을 약속하였다. 정부에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핵병기의 폐절, 일체의 전쟁의 회피, 세계연방의 실현" 등에의 노력을 촉구하였다.


 10년 전, 이와 같은 전후 50년의 시점에 국회결의가 채택되었다. 이번 결의와는 다르게, 그 때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자민당, 사회당, 사키가케의 3당 연립 하에서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씨가 수상이었다.


 과거의 식민지 지배나 침략에의 반성과 사죄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회당에 대하여 자민당이 반발하였다. "일본만이 식민지 지배나 침략을 한 것만은 아니다.", "전과자로서 머리를 숙이는듯한 결의는 반대다."라는 비판이 날아들었다.


 결국, 식민지 지배 등의 표현은 들어갔고, 여당이던 자민당에서 본회의 결석자가 속출. 야당이던 신진당도 결석하여, 결의에 찬성한 사람은 중의원 의석의 과반수에도 이르지 못하는 이상사태가 일어났다.


 우리들은 사설에서 "부끄럽다. 슬프다. 버틸 수가 없다."고 썼다.


 그로부터 10년. 이번 결의에서는 "우리나라의 과거 한 때의 행위"가 아시아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주었다고 하며, 반성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침략적 행위", "식민지 지배"의 표현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전후 50년 결의나 그 후의 무라야마 담화에 분명히 외쳤던 그러한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반성은 아시아에 넓게 받아들여진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이 10년 동안에도 자민당의 정치가는 창씨개명이나 한국 병합을 정당화하려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 때마다 결의의 "반성"은 빛이 바랬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아시아 외교는 팔방색(八方ふさがり: 팔방이 다 막힌 상태)에 빠져있다. 중국에서의 격한 반일 시위 등을 둘러싸고 고이즈미 수상은 4월의 아시아·아프리카 수뇌회의에서 무라야마 담회의 표현을 따라 이해를 구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화해는 나아가지 않았다. 더욱이 사태는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결의에 '침략' 등의 표현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여 반생의 마음이 후퇴한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야당의 요구에서 "10년 전의 결의를 상기하며"라는 한 문장이 삽입되어, 전후 50년 결의를 답습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자민당이나 민주당에 퇴장, 결석한 의원이 있다지만, 찬동한 의원은 전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근린제국과의 사이가 좋아지지 않는 이런 시기인 만큼, 국회의 의사意思로서 새로이 반성을 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 취지가 조금이라도 반영되어 화해가 진전되도록 국회 자신이 노력할 책임이 있다.

[전후 60년 결의] 무엇을 위한 국회결의인가 (요미우리 신문読売新聞, 2005.8.3. 사설)


 역사의 무게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얄팍한 국회결의이다.


 국제평화로의 공헌을 서약하는 '전후 60년 결의'가 중의원 본회의에서 채택되었다.


 결의는 "우리나라의 과거 한 때의 행위가 아시아를 시작으로 하는 다른 국민에게 준 다대한 고난을 깊이 반성하고, 새롭게 모든 희생자에게 추도의 성의를 바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뒤에 "핵병기 등의 폐절, 일체의 전쟁의 회피, 세계연방 실현으로의 길의 탐구" 등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채택의 방침이 중의원 의원운영위원회의 이사회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결정된 것은 불과 1주일 전의 일이었다.


 고노 요헤이 중의원 의장의 강한 의향이 있었다고 전한다. 자민, 공명, 민주, 사민의 4당의 찬성 다수로 순조롭게 결정되었다. 공산당은 반대하였다. 자민, 민주 양당의 의원도 10인 가까이가 표결에 앞서 본회의장을 퇴장하였다.


 민주, 사민의 양당은 당초에 "식민지 지배나 침략적 행위" 등에 대하여 "깊은 반성의 뜻"을 표명한 전후 50년의 국회결의보다도 후퇴하고 있다면서, 난색을 표하였다. 그러나 "이에 10년 전의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로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를 상기하며"라는 문언을 더한 뒤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전후 50년 결의'는 자·사·사 연립정권의 무라야마 내각 시대에 당시 사회당이 주창하여 중의원에서 채택되었다. 문언을 둘러싸고 각 당 사이에 격론이 오갔다.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결의안 채택에는 여당에서도 약 70명이 결석하였다. 신진당 의원도 전원이 결석하고, 공산당은 출석하여 반대하였다. 찬성은 중의원 의원 총수의 과반수에도 미치지 않는, 참담한 '국회결의'였다.


 이번의 '전후 60년 결의'에는 "국제연합이 창설 이래 60년에 걸쳐 국제평화의 유지와 창조를 위하여 발휘한 예지叡智와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라는 부분도 있다. 어째서 전후 60년이 되어서 느닷없이 UN을 들고 나선 것인가.


 게다가 일본은 1956년 이래 50년에 걸쳐 UN을 구성하는 당사자이다. UN 예산의 약 20%를 부담하고,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가입을 바라보는 책임있는 중핵 멤버이기도 하다.


 마치 UN 밖에 있는 제3자처럼 UN에 "경의를 표한다."는 것은 여러 외국의 실소를 사지 않을까.


 "세계 연방 실현"이라지만, 어째서 전후 60년의 지금인가. 당돌한 인상을 받은 사람이 많지는 않을까.


 무엇을 위한 국회 결의인가. 그런 의문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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