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요약

 2010년은 방송인 홍석천이 지난 2000년에 최초로 사회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선언한지 10년째가 되는 해이다. 그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해를 거듭하면서 크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군형법 제92조에서 말하는 ‘추행’이라 함은 계간(항문 성교)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라고 판시함으로써, 동성애 행위를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다’고 언급했다.

 위의 판결에서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듯이, 한국의 법제는 동성애에 대하여 무관심 혹은 무시 내지는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장애·병력·나이·출신국가·민족·인종·피부색·언어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안에서는 끝까지 동성애에 대한 차별 금지 규정이 논란이 되다가 법무부의 입법예고 이전에 급하게 삭제된 바 있다.

 이러한 법제도 내의 동성애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부정적인 태도와는 달리 동성애와 관련한 법적 담론상의 문제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의 동성관계에 대한 논의는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인정하는 문제, 그리고 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단계에서 더욱 나아가, 과연 동성관계에서 나타나는 법적인 문제점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 이를테면 동성간에 사실혼과 유사한 관계가 나타나는 경우에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 ― 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여러 외국의 입법 동향을 살펴보면 이러한 접근에 더욱 참고할 만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단순히 일시적인 경향으로서의 현상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의 진지한 논의를 걸친 입법으로서, 일정한 동성 결합체의 보호에서 벗어나 동성 결합체의 공동생활관계를 이른바 ‘동성혼’(same-sex marriage)으로 보호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와 법제에 크게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법적 제도를 통한 동성 결합체의 보호는 지금에 이르러 피할 수 없는 법적 요청이다. 기본권과 법적 제도의 보장은 상호보완적이다. 동성 결합체 구성원이 가지는 객관적 가치질서로서의 기본권은 법적 제도의 형성을 통하여 동성 결합체의 헌법질서 내의 편입과 함께 그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인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가족 질서 내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 결합체의 법적 보호 방안에는 그 기존 질서 고수의 정도에 따라 구분할 때에, 현행 제도 하에서의 공정증서 계약이나 입양 제도의 활용과 같이 일체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되 당사자의 영역으로 두는 방법,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 일부 특별법(이를테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통하여 개별적으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자에 대하여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방법, 그리고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결합체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방법, 시민 연대 제도 혹은 등록 동반자 제도를 통하여 권리를 인정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혼인의 범위를 확장하여 동성 결합체의 혼인을 법으로 인정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까지 국내의 법적 보호 방안은 일체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방법이었으나, 이러한 방법은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오래 지속되지 않을 전망이다. 동성의 결합체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이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법률혼 혹은 이성간의 결합체인 사실혼과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하여 형성된 어떠한 애정적 공동생활관계, 즉 사실상의 혼인 관계에 있어서 공동생활의 안정망을 통하여 보호하는 것 또한 법의 역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과연 ‘성적(性的) 지향성’이 헌법상 규정된 혼인과 가족제도의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유가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혼인의 절대적인 요소로 인식되어 오던 ‘인간의 근본적인 결합’이라거나 ‘자녀를 수반해야 한다’는 의식 등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혼인의 변화에 대한 법제도에의 반영 없이 기존의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구시대의 의식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혼인의 개념을 고수한다면, 오히려 “혼인이 지니는 역사성을 저해하는 결과”마저 낳게 하는 것이다.

 ‘이성간의 결합’이라는 내용을 헌법상의 규정을 통하여 ‘주어진 구성원리’ 혹은 ‘핵심적인 구조원리’로 보게 된다면 ‘동성 결합체’를 혼인에 포함하여 보호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하게 된다. 그러나 헌법 제36조 제1항의 ‘양성’이라는 문구를 가지고 반드시 혼인은 ‘일남일녀의 결합’만을 강요하는 규정으로 볼 수는 없다.  헌법 제36조 제1항의 규정은 인간의 존엄과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을 보호하여 민주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규정이지, 동성혼을 금지하고자 하는 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헌법의 혼인 내에 ‘이성간의 결합’이라는 요소가 본질적 요소, 즉 주어진 구성원리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동성혼인”이라는 새로운 가족개념 자체를 염두에 두지 못한 것일 뿐, 혼인으로의 동성혼인 개념의 포섭이나 동성 결합체에 대한 보호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또한 혼인에 있어서 “이성성(異性性)의 요청”은 혼인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전통이지만, 그 법률혼의 독점적 지위는 사회의 변화와 함께 조금씩 완화되어 갔다. 혼인과 가족생활의 변화가 먼저 찾아온 서구 사회에서는 법률혼의 위상이 광범하게 침식되어 왔으며, 다양한 혼인유사동거(婚姻類似同居)의 법적 효과는 확대되고 다양한 가족형태가 출현하였다. 기존의 법률혼주의와 일부일처제에 일부 반하는 면이 있을지라도, 그 면이 언제나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는 없고, 기존의 법률혼주의나 일부일처제에 다소 모순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정의에 합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족의 정의(定義)는 “자연 혹은 보편(普遍)의 반영이 아니라, 한 쪽의 정의(定義)를 채용하여 다른 한 쪽을 부정하는 것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구축되는 사항이라는 점”이라는 지적이나 정책적으로는 인구정책적 목적에서의 혼인 제도의 반영을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법적으로 ‘출산’은 어떠한 혼인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기존의 가족제도에서 과연 명백히 동성 결합체의 보호를 금지하여야 할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혼인에서 ‘이성성’이라는 요소는 혼인 자체의 정의(定義)의 문제가 아니라, 법이 ‘이성 결합체’를 기준으로 혼인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도출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연장선에서 혼인만을 유일하고 정당한 결합 관계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공동생활을 보장함에 있어 국가나 사회의 법적 보호나 이익은 동성 결합체라고 할지라도 평등하게 부여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안을 택할 것인가는 입법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프랑스식의 민사연대계약은 혼인의 본질적인 효과인 부양의무 또는 정조의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동성 결합체에 대하여 혼인 또는 준혼(準婚)으로서의 보호를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북구 혹은 독일과 같은 등록된 동반자 제도 또는 영국의 시민 동반자 제도의 경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본질적인 근거에 의거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혼인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은 아직 여론이 형성되어 있지 아니하고, 더욱 깊은 검토를 필요로 한다고 할 것이다.

 이후에 있어서의 제도 설정은 동성 결합체를 구성하는 상호의 성실과 책임을 보증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측면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결합체의 삶을 구성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주거권, 재산법적 계약의 측면, 권리의 승계자로서의 지위, 그리고 관계 해소 이후의 일정한 재산법적 책임과 상속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동성 결합체의 권리 보장은 단순히 하나의 공동 생활체로서의, 그리고 가족 공동체의 외연 확대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결합체를 구성하는 각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크나큰 의의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직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동성 결합체, 그리고 실질적으로 결합체를 구성하는 동성애자는 격리 혹은 외면되어야 할 사회적인 존재가 아니다. 기본권의 주체가 되는,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헌법상의 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인격적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또한 자기 자신의 결단을 가지고 스스로를 규율하며 주변 세계를 형성할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결합체를 구성하는 것에 대하여 제도적인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적 가치에서의 인간 존엄성의 실현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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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rqw
    2012.11.26 16:53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좋은 자료 감사히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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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전문(前文)의 분석[각주:1]

1. 언어적 분석[각주:2]
 1) 축어 : 표준어 이상으로 고풍적이며 일상 통용되지 아니하는 장중한 문체로 헌법의 생성 내지 제정과 그 효력에 관하여 기념하는 언어를 쓴다.
 2) 평상어
 3) 전문어

2. 이론적 분석[각주:3]
 1) 헌법문화로서의 국민에게 접근하는 언어문화
 2) 자기이해의 표명과 기초정립으로서의 전문
 3) 시대 속에서의 교량적 기능
 4) 다른 헌법규범(조문)과의 내용적 조화

생각건대, 인간의 생명은 人間의 實存 그 자체이고 모든 기본권의 理論的 前提이며 本質的 內容을 이루고 있다. 死刑이 아닌 終身刑으로 하더라도, 國家의 安保·秩序維持·公共福利에는 하등 지장이 없을 것이며, 인간의 尊嚴性과 基本權의 본질적 내용의 침해금지를 고려할 때 저자는 死刑制度가 違憲이라고 본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범죄행위로 모든 국민이 용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選擇的으로 사형을 용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각주:4]
  1. 이하 구병삭, 신헌법원론(제3전정판), 박영사, 1996년, 166~167쪽. [본문으로]
  2. P. Häberle, Präambeln im Text und Kontext von Verfassungen, in Joseph Listal und Herbert Schambeck, Hrsg. Demokratie und Bewährung, FS. für Johannes Broermann, S.227ff. [본문으로]
  3. P. Häberle, a.a.O., S.229ff. [본문으로]
  4. 이하 구병삭, 전게서, 546쪽. 414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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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글이 티스토리 공지에 올라왔다. 관련하는을 "관린하는" 이라고 적은 오타는 무시하고, 하여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블로그에 무단으로 공유하는" 이라는 부분하고 "가지고 있는 소설의 원문을 블로그에 올려둔 적은 없는지"가 오해를 만드는 것 같다. 이 네티즌은 "불법공유 하지 말라고"라고 명확하게 적어줘야 하는 모양이다. 보다가 기겁을 한게 리플이 다음과 같다.


저작권법은 현실과 동떨어져서 비현실, 이상을 규율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쓰다보니 이상한 부정이다.). 정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가. 법은 필연적으로 일반적·추상적일 수 밖에 없고, 결국 그에 대한 적용은 인간의 문제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법적용에는 해석이 수반되며, 해석은 법관과 기타 등등의 역할이다. 이 문제는 일전에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 저작물의 번역은 2차적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하는가"라는 문제와도 상통하는데, 결국에 그 해석에 있어서 어떠한 부분을 취하는가. 라기보다 이 문제와 그 문제는 얼마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를 분석하는 원론적인 부분에 머물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요새 법 적용이 하도 엉망이다보니, 그리고 하도 불법공유가 성행해서 적발을 하고 또 기업형 고소까지 동원되어서 국민들 등을 쳐먹으니까 사람들이 오해할 소지가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저작권법은 원칙적으로 불법적인 저작권 침해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지, 일정부분 저작권에 제한도 가하고 있다. 즉 저작권법은 저작권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 저작권을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저작자의 동의 없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의 리뷰를 올린다. 누구는 영화포스터를 올려놓고 A4 용지 12장 분량의 영화분석문을 써놓았다. 누구는 영화포스터를 다섯장 올리고는 "재밌음."이라고 올렸다. 이 리뷰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것일까. 전자의 경우 분명 저작권법 제28조의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는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과연 "비평을 위하여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했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이러한 글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그래도 저작권자의 관용을 바라고, 실제로 관용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보호되는 가에 대하여는 의문이라고 할 것이다.

저작권법은 1957년 제정으로부터 언제나 이러한 원칙을 지켜왔다. 정당하고 공정한 인용이라거나, 저작권자의 저작권 제한. 이러한 목적에 해당하는 경우 분명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할 것이지만, 이러한 목적이 아닌 경우. 과연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소설 한편을 text 포맷 파일로 올려놓고는 "재밌음"이라고 썼는데 과연 이게 비평인가. 이런건 보호해주어서는 안된다. 공지에서도 그냥 비평썼다고 잡아간다는 소리는 없고, 어떠한 관련자도 이런 소리를 한 적은 없다. 그럼 이러한 이상한 반응의 근원은 무엇일까.

앞에서 썼듯이 법 적용이 하도 엉망이라로 시작한 그 부분이 원인일 것이다. 인터넷의 성장이 가져온 또 다른 이면, 불법공유의 세계. "일본 에로망가가 한국에서 무슨 저작권이 있냐." 에로망가는 왜 저작권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 한국의 블로거가 블로그에서 일본에서 출판된 만화를 번역/식자하여 공개하는 바람에 일본의 원작자가 기겁하는 일마저 나타날 정도로 조선의 저작권의 법적/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편이다. 물론 불법은 경제의 발전과 기술의 발전을 낳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를 방치할 수 있는가. 물론 적용에 있어서 일정부분 무차별 기소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런 부분을 가지고 저작권의 비보호를 주장할 수는 없다. 이는 내가 위키백과를 튀어나오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물론 정확한 원인은 전문적인 영역에 비전문적인 사람이 언급하는 부분에 있어서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위에서 불가피하게 일단은 리플을 캡쳐했는데, 저만큼 이 조선의 저작권 인식 상황을 보여주는 데에 적합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명예훼손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도록 하고. 제목이 적절한지는 모르겠고. 하긴 요새는 대학커뮤니티 게시판이라는 데에서 게임을 주고받아도 서로 감싸주고, 운영자는 봤는지 못봤는지 하는 상황이니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어려운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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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diode.nayana.com BlogIcon ArgeC
    2009.05.05 22:17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오호 소리없이 올라가는 추천수..?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9.05.06 06:19 신고 삭제 주소

      우, 우왕..

  2. 근데
    2009.05.06 02:02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왜 계속 조선이라고 우리나라를 칭하시는지;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9.05.06 06:28 신고 삭제 주소

      개인적인 습관입니다. 저는 애국반공보수자유민주주의자이니 니북과 관련되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요번에는 조선이란 표현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꼼꼼히 보셨군요;;

  3. Favicon of http://bloglish.tistory.com BlogIcon INNYS
    2009.05.06 02:04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저작권법이 그 목적으로 추구하는 "문화발전"을 생각해 볼 때 Copyright(저작물 적극 보호)이 더 적절한지 Copyleft(무제한 자유이용)이 더 유용한지에 대한 고민을 가끔 해 보곤 합니다. 합리적인 법적용을 기대해 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cafe.naver.com/antikowikipedia BlogIcon 기존管理者퇴출협회
    2009.05.15 11:03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우리 모두는 세종대왕의 저작물인 한글에 대하여,
    원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은 물론,
    수정배포복제전송을 하고있습니다.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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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양반때문에 괜히 공부를 하고 고발장을 써냈다. 첫 실습(?)

님께서 상당히 착각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 국가의 공공기록이나 공포물, 공시, 공보, 법률 체제는 저작권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공으로 알려야 할 것들이고 널리 알리는 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혹 가정적으로 저작권이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저작권은 해당국가의 정부에 속한다고 할 것입니다.

님께서 나름대로 한글로 번역하시고 수고를 하셔서 성립하지도 않는 저작권을 주장하시는 듯 하나, 님 말대로 가정적으로 저작권이라고 하더라도, 저작권은 당사자의 동의하에 번역하여 제공하였을 때 저작권이 성립하는 것이지, 님처럼 스스로 자의적으로 임의적으로 번역해 놓고 저작권이라고 한다면, 저작권이 성립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님의 행위 자체가 오히려 남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저작권 침해 행위가 됩니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라는 책이 영어로 쓰여졌는데, 님께서 해리포터의 책 내용을 원저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한글로 번역해놓고 내가 번역했으니 내가 저작권자다 하면 원저작자 조앤롤링의 저작권을 침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님이 일본헌법을 한글로 바꿔놓은 경우 원래 저작권 자체가 안되지만, 저작권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님이 일본정부의 허락을 받았다거나 일본국회의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닌한 님은 저작권자가 아니라 저작권 침범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님의 논리에 따르면, 님은 지금 저작권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는 저작권 침해자이며, 따라서 일본국정부는 님을 저작권 침해범으로 엄벌할 수 있습니다.

현재 님의 부당한 신고로 게시한 글 자체를 아예 볼 수가 없는 상태이나, 빠른 게시를 위해 님의 글을 참조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참고했는지 안했는지도 본인인 내가 열람하여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링크 출처도 없이 게시했는지 알 수 없는데, 대체로 링크는 밝히고 글 쓰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불확실 합니다.

또한, 님의 글이 아니어도 제가 스스로 일본헌법을 번역할 수 있고, 여러 자동번역프로그램을 통해 번역해 볼 수 있으며, 다른 문헌이나 사이트를 참고해도 알 수 있고, 하다못해 일본대사관에 요청해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굳이 일본국헌법을 장황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글의 목적과 의도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님의 이러한 말도 안되는 허위적 신고와 이로인해 표현의 자유가 명백하게 상당한 기간 침범당하고 있고, 원상회복이 안되고 있으므로, 님에 대해서 조만간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에 대해서 분명한 법적인 지식을 가지고 변호사든 누구든 상의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법에 대해서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알고 있으며, 이 상황에 분명히 님의 대응은 상당히 오버가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예를 들어, 님께서 번역했다는 그 번역문을 인용하지 않아도, (인용했는지 안했는지 제가 제 글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불확실합니다.) 일본헌법을 일본정부 법전, 공포자료에서 일본어 원문대로 인용해도 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님이 번역했다는 그 번역글을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으며, 본질적으로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즉, 님께서 그대로 가져다쓴거 같아서 님이 불쾌하면, 그 부분을 빼버리고 대체하면 되는데, 님의 신고로 인해 글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상당한 기간 열람 불가 상태이기 때문에 표현출판의 자유와 자아인격실현의 자유에 상당한 침해를 당하고 있으므로 법적인 조치를 진행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 다음 아고라에다가 일본국헌법 번역문 전문만(!)을 올렸는데, "참고했는지 안했는지도 본인인 내가 열람하여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링크 출처도 없이 게시했는지 알 수 없는데, 대체로 링크는 밝히고 글 쓰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불확실 합니다"라고 해서 좀 웃었다. 전문만을 갖다 긁어서 올려놓고는 "굳이 일본국헌법을 장황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글의 목적과 의도를 달성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글쓰신 모양을 보니 대충 아고라에 유행하는 한줄 아포리즘이 대부분이던데. 이명박 대통령 퇴진의 선봉장에 서신 모양이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답변해드렸다.

뭔가 아시면서도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국가의 공공기록이나 공포물, 공시, 공보, 법률 체제는 저작물임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 뿐이며, 따라서 번역에 저작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닐뿐 아니라 번역 뒤에 같은 저작권으로 공개되어야 한다는 유보 또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 즉 2차적 저작물은 원저작물과 독립하여 독자적인 저작권으로 보호받습니다. 또한 2차적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원저작자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무단 번역의 경우에는 그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법령의 경우 그러한 제한이나 이후의 공개 유지에 대한 유보가 전혀 없으므로 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작성하신 글은 본 블로그에 게재된 일본국헌법 번역문의 전문"만"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게재한 것으로 저작권법상의 보호받는 대상이거나 저작권을 제한하는 경우에 명백히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답변이...

님께서 저작권법을 얼마나 제대로 찾아보시고 법적으로 제대로 상식적으로 건전하게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으나, 님께서 문제삼는 일본헌법 번역글은 물론이고 님께서 이 게시판에서 삼고있는 많은 글들이 님이 저작권을 주장하기에는 여러 문제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님께서 얼마나 법률이나 변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여러가지 어불성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님께서는 지금 "저작물"에 대해서 기본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으며, 저작물은 창작물을 말하는 것이고, 2차 저작물도 새로운 창작이 가미된 창작물을 말하는 것이며, 사적인 권리관계로 본다면, 2차 저작물은 1차 저작권을 침범했을 경우 1차저작권자가 당연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은 분명히 제7조에서 헌법,법률,조약,명령 조례 및 규칙, 고시, 공고, 훈령, 판례, 결정, ..., 사실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또 공공으로 널리 알려야 하고,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들에 대해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님께서 님의 게시글을 제2차 저작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님의 게시물이 창작물이라고 주장하는 꼴인데, 그것은 결국 님께서 단일적으로 규정된 법률을 창작했다는 뜻이 되므로, 님은 법률을 왜곡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즉, 님이 언어를 바꾸어 법률을 번역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님의 저작권은 아예 성립이 되지도 않고 보장도 되지 않습니다. 님께서 그게 기분 나쁘면 남한테 안보여주고 님 혼자서 보면 됩니다. 남한테 안보여줬다고 님 뭐라하지 않습니다.

님께서 얼마나 법률의 세계에 가깝게 사시는지는 모르겠으나, 법률의 측면이나 정치학이나 국제정치학이나, 인문학의 측면에서도 님의 이 게시판의 글들이 그렇게 독보적일만큼 전문적이라거나 본인이 깊게 연구하여 제공되고 있다고 볼 수도 없고, 위키페디아나 기타 문헌물을 참고하여 제공하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마당에 억지를 부리지 마시기 바라며, 정당하게 문제삼을 것이며, 개인적으로 제 권리를 위해서도 법률과 멀리하여 살지는 않는 사람임을 밝힙니다.

라고 왔다. 분명 일본물어 수준이 높지 않다는 측면에는 분명 동감하고 있다. 내가 무식한 따름도 있고, 원래 열 때부터 나같이 무식한 사람들이 관심은 있는데 일본어가 힘들까봐 만든 블로그니까. 그렇다고 저작권이 수준에 따라 생기는 것은 아니잖은가.

게다가 2차적 저작물은 1차적 저작물의 허가여부와 관계없이 발생한다. 1차적 저작권자가 2차적 저작권자에 대하여 진행하는 일련의 분쟁과 관계없이 2차적 저작권자의 저작권은 보호받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과 판례의 입장이다?...

그럼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의 번역은 2차적 저작권의 대상이 안되나. 이 문제에 가장 크게 기여한건 아마 네이버 용어사전이 아닐까 하는데, 누가 썼는지도 안나오더라. 하여간 네이버때문에 느이들이 고생이 많다... 가 아니라, 하여간 네이버 용어사전이 저작번역권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저작물을 번역했을 때, 그 번역물에 대해 번역자가 가지는 권리. (중략) 그러나 동법 제7조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을 번역한 경우에는 그 번역물 역시 보호받지 못한다.


이게 문제인데, 일단 저작권법(조선)을 살펴보면.

제7조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은 이 법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1. 헌법·법률·조약·명령·조례 및 규칙
2.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시·공고·훈령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
3. 법원의 판결·결정·명령 및 심판이나 행정심판절차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절차에 의한 의결·결정 등
4.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한 것으로서 제1호 내지 제3호에 규정된 것의 편집물 또는 번역물
5.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
제5조 (2차적저작물) ①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이하 "2차적저작물"이라 한다)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②2차적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결국 문제는 제5조와 제7조의 관계인데, 아마 네이버가 제4호를 보고 착각한 것 같다. 일본 저작권법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 저작권법 제13조인데,

(권리의 목적으로 삼을 수 없는 저작물)
제13조 다음 각 호의 하나에 해당하는 저작물은 이 장의 규정에 따른 권리의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
1. 헌법 기타의 법령
2.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기관, 독립행정법인(독립행정법인통칙법(헤이세이 11년 법률 제103호) 제2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독립행정법인을 말한다. 이하 같다.) 또는 지방독립행정법인(지방독립행정법인법(헤이세이 15년 법률 제118호) 제2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지방독립행정법인을 말한다. 이하 같다.)이 발하는 고시, 훈령, 통달 기타 이와 유사한 것
3. 재판소의 판결, 결정, 명령 및 심판, 행정청의 재결 및 결정으로 재판에 준하는 절차에 의하여 행하지는 것
4. 전3호에 정하는 것의 번역물 및 편집물로서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기관, 독립행정법인 또는 지방독립행정법인이 작성한 것

분명 일본에서도 헌법 원문은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그럼 그 번역문은 보호받지 못할까? 당연히 보호받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 저작권법 제13조 제4호에서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기관, 독립행정법인 또는 지방독립행정법인이 작성한 것"이 저작권의 목적이 되지 못한다고 했을 뿐이고, 당연히 해석을 통하면 저작권의 목적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계승균,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 창작과 권리 2005년 봄호(제38호), 2005년 3월, 76쪽~95쪽.에서도 지적하듯이 "작성의 주체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한정되므로 그 외의 자가 편집한 법령집이나 번역물은 저작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저작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복제, 배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고, 또한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법령을 개인이 외국어로 번역한 경우에는 번역자가 저작권자가 되며, 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함부로 출판하여 배포해서는 안된다."(이상 84쪽.)고 언급하고 있다.

조선에 해악을 가져오는 것이 다음 아고라하고, 네이버하고. 또 미네르바인지 하는 사람이다. 요새는 남의 저작권을 날로 먹는 사람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니. 그러고보니 며칠전에 일본의 에로만화가 조선에서 무슨 저작권이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

하여간 원 논리에서 문제는 2차적 저작권과 원저작권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고, 원저작권과 2차적 저작권의 발생에 있어서도 잘못 이해하고 있고. 원저작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발생한다는 전제로 자꾸 넘어가다가 자기도 헷갈리는 것 같고. 자기가 무슨 글을 썼는지도 모르고(하긴 하루에도 수십개씩 한 줄짜리 글을 쓰시던데, 기억하실리가 있나. 그것도 작년에 쓴 글을...).... 하여간 이 건에 대하여는 성북경찰서(가 가까우니까, 들렀다가 창신동에를 좀 들러야지.)에다가 살포시 찌를테다. 형사사건 실습의 좋은 기회이고, 잘 봐서 조정(을 내가 민소법할때 배운것도 같은데 가물가물하다)도 실습을 해보면 좋겠다. 수수료가 100만원 미만 사건은 만원밖에 안하던데, 조정이. 근데 먹고살 돈도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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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9.04.27 10:53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내 생각이 맞았다. 쓰면서도 혹시나 했는데, 도서관에서 몇 문헌을 참조한 결과 동일한 논지로 써놓았다. 대표적으로 오승종, 저작권법.

  2. Favicon of http://ex.tistory.com BlogIcon Excretion
    2009.04.27 13:19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인터넷이라는것은 경성제대-과학기술원-대구사범이 연결해서 쓰던 시절이 제일 개념인듯... 거기에 쓸 만원은 흔쾌히 꾸어줄 수 있는데 어찌하랴?

  3. Favicon of http://twinpix.oiku.net BlogIcon twinpx
    2009.05.23 06:01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번역물 2차저작권에 대한 기초개념도 없는 양반이구려.

    고발장 어찌됐삼?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9.05.23 11:20 신고 삭제 주소

      잘 처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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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인격권과 무규정적이고 비정형적인 광범한 자유행동권 및 객관적·법적 성격을 가지며, 제37조 제1항의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를 인정하는 실질적 기준의 역할을 하는 포괄규범으로 이해하는 견해(계희열 교수 및 김선택 교수의 견해)

행복추구권의 이념성을 부인하고, ⓐ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추구권’ 사이의 긴밀한 결합에 근거하여 좁은 범위의 개인적 인격영역에 관계되는 주관적 공권으로서 일반적 인격권이 형성된다고 하면서, 전자는 일반적 인격권을 인정함에 있어서 그 보호영역에 한계를 그어주기 위한 보조적인 기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 행복추구권규정의 보호영역의 한 카테고리로서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는 ‘행복추구’라는 개념 하에 포섭될 수 있는 무규정적이고 비정형적인 넓은 범위의 행동을 보호한다고 하여 그에 대해서는 일반적 행동자유라는 독자적 기본권으로서의 성격을 부여하며, ⓒ “행복추구권과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조항을 결합하여 정형화된 자유영역에서의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기본권과 동등한 권리들’을 기본권 보호체계 내에 끌어들이는 기준으로서 작용한다고 하면서, 이 경우 주관적 권리의 표현형식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추구권은 단지 ‘포괄규범’으로서의 객관적·법적 작용을 한다고 본다.


소극적·방어적 권리인 동시에 적극적·능동적 성격을 갖는 복합적 권리로서, 협의의 인격권과 인격발현권(일반적 행동의 자유)을 포괄하는 일반적 인격권이라는 견해(홍성방 교수의 견해)

이 견해는 행복추구권의 헌법수용과정에서 행복추구권이 인간존엄성조항의 구체화 필요성에서 규정된 사실, 또한 그것이 권리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행복추구권은 이념이 아니라 개별기본권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또한 행복추구권의 행복을 공적·사적인 행복은 물론 정신적·물질적 행복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하는 이상 행복추구권의 법적 성격을 일단 소극적·방어적 권리인 동시에[각주:1] 적극적·능동적 성격을 갖는 복합적 권리라고 한다. 또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개별기본권과 관련하여는 이념으로서만 작용하며, 이 이념은 헌법에 규정된 개별기본권으로 구체화되며, 헌법 제37조 제1항의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의 실질적 기준으로서 작용한다고 한다. 따라서 생명권을 행복추구권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서 추론하며(판례와 동일한 점, 김선택 교수의 견해와의 차이점), 행복추구권은 일반적 인격권이자 협의의 인격권과 인격발현권(판례가 언급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자기결정권, 김선택 교수가 언급하는 비정형적이고 무규정적인 광범한 자유행동권을 말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각주:2] (판례와의 차이점, 김선택 교수의 견해와의 공통점).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헌법적 근거

헌법 제10조 후단의 행복추구권(확립된 판례): 행복이란 각자의 인격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의 내용은 각자의 인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행복‘추구권’이란 각자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유롭게 노력하고 행동할 권리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자유로운 행동이란 결코 동물적 행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행동, 즉 인격적 행동을 말한다. 결국 행복추구권이란 인격에 따라 상이할 수밖에 없는 행복을 인격적 행동을 통해 얻으려는 권리, 즉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과 실현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행복추구권이란 인격의 자유발현권(Recht auf freie Entfaltung der Persönlichkeit)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한편, 행복추구권이 인격의 자유발현권과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포함한다고 하거나[각주:3] 심지어는 일반적 인격권까지도 포함한다고 보는 설[각주:4]도 있으나, 이는 타당하지 않다. 인격의 자유발현권이라는 개념은 독일 기본법 제2조 제1항에서 유래하는바, 원래 독일에서 초기에 이 권리의 보호영역을 인격의 인격발현의 특히 중요한 요소들(즉 핵심영역)에 국한시키려는 입장이나 인격발현에 현저한 의의를 갖는 것에 국한시키려는 입장이 주장되었으나, 그 범위를 명쾌하게 제시하는 데 실패하면서 사실상 폐기되고, Elfes 판결을 계기로 인격의 자유발현권은 일반적 행동의 자유로 보는 입장이 통설이 되었다. 즉 인격의 자유발현권 = 일반적 행동의 자유이다.(국내에서 명시적으로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견해로는 계희열 교수)
  1.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을 일반적 행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유에 포함된 권한을 보장하는 주관적 공권이라 한다(BVerGE 35, 202, 221).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독일의 통설적 입장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2. 독일에서는 기본법 초기에 기본법 제2조 제1항의 인격발현권은 기본권이 아니라 기본적 헌법원리이자 기본법 제정자의 기본결단이라는 견해가 주장되었다. 또한 지금까지도 H. Peters 및 K. Hesse 교수는 기본법 제2조 제1항은 좁은 생활영역, 물론 순정신적·윤리적 발전에 한정되지는 않은 생활영역에 대한 보장이라는 이른바 ‘인격핵심이론’을 주장하고 있다.<br />그러나 통설과 판례는 인격발현권을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기본권적으로 보장한 것으로 보고있다. 나아가서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법 제2조 제1항이 합헌적 질서에 의하여 근거되지 않은 국가적 강제를 통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 일반적인 기본권적 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한다.(BVerGE 44, 59, 68f) [본문으로]
  3. 일부 판례에서도 이러한 잘못된 주장이 등장한다. 가령 헌재 1991. 6. 3. 89헌마204; 96헌가5; 1998. 10. 29. 97헌마345. 한편, 헌재 2001. 8. 30. 99헌바92에서는 “인사장의 교환이나 위와 같은 해명행위가 공선법 제93조 제1항에 의하여 제한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로 인하여 인간의 존엄성이나 행복추구권에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은 있겠으나”라고 하는가 하면, 헌재 2002. 1. 31. 2001헌바43 - 공정거래위원회의 법위반사실 공포권에서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헌법 제37조 제1항의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자유와 권리로 보고 있다. [본문으로]
  4. 국내에는 이 설이 이른바 인격적 이익설로 소개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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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jw6109 BlogIcon 최재원
    2009.06.21 02:58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올해 기본권론 들으면서 가장 이해안되던 부분이 이곳이었습니다(...) 수업은 장영수 교수님 수업을 듣고 혼자 공부할땐 계희열 교수님 교과서를 읽었는데(...) 가장 이해가 안되던 부분이 이곳이었죠. 지금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행복추구권과 제37조 제1항을 결합하여 열거되지 아니한 자유권을 도출해낸다는 이론 하나 뿐입니다. orz

    p.s. 계희열 교수님 책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입니다만, 왠지 전 이 행복추구권을 일반적 행동자유권 내지 인격의 자유발현권으로 해석하는 견해들이 행복추구권이라는 빈껍질(Leerformel)에다가 기본법 제2조의 해석론을 말 그대로 '충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9.06.21 16:12 신고 삭제 주소

      여쭤볼 교수님이 카나다로 떠나시는 바람에, 아직 미제로 남겨둔 문제입니다만(그덕에 과목 두개를 말아먹었지만-_-) 충전했다는 느낌이야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거고....

      행복추구권이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어떻게 결합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기본권 도출의 체계가 완전히 달라지니까, 고민할 필요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말 이해에 혼란을 느낀 부분은 "행복추구권이 인격의 자유발현권과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포함한다고 하거나[각주:3] 심지어는 일반적 인격권까지도 포함한다고 보는 설[각주:4]도 있으나, 이는 타당하지 않다."라는 구절입니다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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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전반에 걸친 여러가지 잡다한 글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몇 가지 있다. 긁어모아 본다. (만담을 저리 적은 것은 부러 한 짓이다.)

정이 누구냐
키에르케골과 틸리히의 책들을 읽으며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것이 대학시절의 교양이었던 것 같다. 영어로 된 융(C. Jung)의 책을 읽고있으니 법대친구가 "정(Jung)이 누구냐?"하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무식한 법대생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각주:1]

카알 슈미트와의 서신 교환
카알 슈미트(Carl Schimitt, 1888~1985)는 너무나 유명한 학자인데 나는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고 다만 두 번 서신만 교환했을 뿐이다. 그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프라이부르그에서 우연히 슈미트와 가깝다는 일본 교토대학의 헌법교수 아베 데루야(阿部照哉)교수를 만나 한국에서도 김기범(金基範)교수가 슈미트의 『헌법이론』Verfassungslehre 을 번역 출간하였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 그랬더니 아베 교수는 모레 슈미트교수를 만나러 가는데 그 얘기를 하겠다고 한다. 나는 "아차, 혹시 번역허가권 문제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그 날 밤 서울로 김교수께 급히 편지로 알려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김교수는 번역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내가 잘 얘기해달라는 답장을 보내오셨다. 나는 좀 난처했지만 정중히 그런 사정을 슈미트교수에게 썼다. 얼마 후 답장이 왔는데, 걱정과는 달리 김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는 친절한 내용이어서 역시 대가답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김교수에게 기쁘게 전해드렸다. 그런데 얼마 후 김교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이 왔다. 그래서 다시 슈미트교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랬더니 또 알려줘서 고맙다는 편지가 왔다. 내가 이 편지 교신 얘기를 했더니 프라이부르그의 교수와 학생들이 그 편지를 잘 보관해두면 나중에 보물이 될 것이라고들 웃었다.[각주:2]

물권행위에 대한 유인성과 무인성 논쟁
이 이야기는 내가 이은영 교수의 론문에서 읽었던 일인데, 크게 알 길이 없으니 두루뭉실하게 적는다. 민법의 물권행위 분야에서 독자성 문제와 유인성(有因性)/무인성(無因性) 문제는 오랜 기간 쟁점이 되어왔는데, 서울대학교에서 1세대 대한민국 법학자라고 할 수 있는 김증한 교수는 이른바 무인론을 주장하였고, 2세대 학자인 곽윤직 교수는 이른바 유인론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두 교수께서 활약하시던 서울대의 70년대가 지나고, 김증한 교수께서 1985년도에 퇴임을 하셨는데 오호 통재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론문을 쓴 정옥태 교수께서 김증한 교수를 따라 무인론을 결론으로 하는 론문을 제출한 것이다. 이은영 교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법대를 휘어잡던 곽윤직 교수께서 그를 이유로 론문심사를 거절하시는 바람에 결국 정옥태 교수는 결론 부분을 유인론으로 수정하고 론문심사를 통과하였다고 한다(이야기를 기준으로 하면 해당 논문은 정옥태,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1987년.이다. 확인치는 못하였다.). 이은영 교수에 의하면 이후에 낸 론문에서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자백하고 견해를 수정하였다고 하는데, 앞의 박사학위논문은 내가 아직 확인치 못하였고, 정옥태 교수의 이후 유무인론 관련 론문을 살폈는데 천학(淺學)하여 저러한 일을 확인치 못하였다.[각주:3] 덧붙여 일전에 정옥태 교수를 찾던 중에 이 분이 故 라는 수식이 붙었으므로 몰하신 것은 알았으나 시기는 알 수 없었다.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장까지 지내셨다는데 어찌 기록이 없을까, 안타깝다.

+ 추가증보한다. 조선일보 기사를 뒤진 결과, 1993년 7월 24일에 전라도 영암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하셨다. 사고직후 정학장의 일방적 과실로 알려졌으나 유족과 경찰이 끈질긴추적끝에 상대편 과실임을 밝혀냈다고 한다. 2010.3.23 추가

  1. 최종고, 체험적 한국법사학, 법사학연구 제24호, 한국법사학회, 2001년. [본문으로]
  2. 최종고, 앞의 글. [본문으로]
  3. 이상 대부분 : 이은영, 물권행위에 관한 이론적 논쟁, 한국민법이론의 발전 : 무암 이영준 박사 화갑 기념 논문집, 1999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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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x.tistory.com BlogIcon Excretion
    2008.02.10 11:52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천학하여 두 번째 꼭지는 영 알아먹질 못하것다. 저것이 왜 웃긴것이냐.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8.02.10 19:44 신고 삭제 주소

      재미있는 일화이지, 웃긴 일화는 아니여. 재미 포인트는 1. 무허가 번역, 2. 나중에 보물

  2. reskaz
    2008.02.14 00:52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저 쓸데없는 유무인론(....) 1학년 때, 물권법 시간 논문비평하면서 요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레포트를 써 오라길래 '이것은 하등 부질없는 짓이오'를 A4 10페이지로 풀어써 냈던 기억이.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8.02.14 02:10 신고 삭제 주소

      이은영교수도 그 소리를 했음 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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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로 사건(ポポロ事件)은 도쿄 대학의 공인 학생 단체인 ‘포포로 극단’의 연극 발표회 도중에, 학생이 발표회장의 사복 경찰에게 폭행을 가한 사건이다. 일본국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 포함된 대학 자치의 문제가 불거져, 일본 최고재판소까지 간 사건이기도 하다.


발단

1952년 2월 20일, 포포로 극단은 도쿄 대학 혼고 캠퍼스에서 마쓰카와 사건을 주제로 한 연극 ‘언제의 일인가’(何時の日にか)를 공연했다. 이는 대학의 허가를 얻은 것이었다. 공연 도중에 관객중에 사복 경찰 3명이 있는 것을 발견한 학생들은 3명을 붙잡아 경찰 수첩을 빼앗고, 사죄문을 쓰게 했다. 그때 이 학생들은 나중에 폭력을 가했다는 이유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 의해 기소당하게 되었다.

1954년 5월 11일, 도쿄 지방재판소의 1심에서는 학생의 행위가 대학의 자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정당하다고 판시하고, 학생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인 도쿄 고등재판소에서 열린 1956년의 재판에서도 1심을 지지해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상고했다.


최고재판소 판결

1963년 5월 22일의 최고재판소 판결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도쿄 지방재판소로 환송했다.

최고재판소는 판결에서 “대학의 학문의 자유와 자치는 대학이 학술을 중심으로 하여 깊이 진리를 탐구하고, 전문적인 학예의 교수와 연구를 본질로 하는 것에 근거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교수 기타 연구자의 연구, 그 결과의 발표, 연구 결과의 교수의 자유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자치를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대학의 시설 및 학생은 이들 자유와 자치의 효과로서, 시설이 대학 당국에 의해 자치적으로 관리되어, 학생 또한 학문의 자유와 시설의 이용을 인정받는 것이다. (중략) 본 건의 집회는 사실상 학문적인 연구와 발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활동이며, 공개의 집회 또는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대학의 학문의 자유와 자치는 이를 향유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본 건 집회에 경찰관이 입회한 것은 대학의 학문의 자유와 자치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


환송 이후

1965년 6월 26일, 도쿄 지방재판소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항소(도쿄 고등재판소, 1966년 9월 14일)와 상고(최고재판소, 1973년 9월 14일)가 모두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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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이컨&밀턴
    2011.12.24 10:33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자세한 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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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이항녕

소고 이항녕

이항녕
(李恒寧, 1915년 7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법철학자로, 호는 소고(小皐)이다.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다. 1934년에 서울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에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수와 창녕군수를 지냈다. 해방 후 청룡초등학교와 양산중학교의 교장을 맡았다가, 1949년에 동아대학 교수로 대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성균관대학을 거쳐 1954년부터 1971년까지 고려대학교에서 민법과 법철학을 강의하였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는 홍익대학교 총장을 지내고,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1955년에 《법철학개론》을 출간하였다. 《법철학개론》은 동아시아를 동방, 서유럽을 서방, 서아시아와 동유럽을 중동 또는 중방이라고 지칭하고, 풍토지대를 구분의 기준으로 삼아 법문화를 기초로 하여 법철학과 법의 특성을 기술하고 있다. 서양 위주의 법철학에서 탈피하여 동양의 새로운 입장에서 다시 고찰한 그의 관점은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저서는 스즈키 게이후가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되기도 했다.

적극적인 친일행위는 하지 않았으나, 일제 말에 고등문관시험을 통해 고등관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자신의 경력에 대해 반성하거나 글을 여러 차례 남겼다.

반일사상을 가지고 일본에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고, 또 일부는 일본이 저렇게 강국이 되었는데 어지간해서는 망할 것 같지 않으니까 그저 거기 붙어 사는 것이 안전하다고 안일한 생각을 가진 학생도 있었어요. 저는 후자 쪽이었죠. 민족이다, 우리나라의 장래다, 이런 것보다는 개인의 신상이 편한 쪽을 택한 거예요. 그러니까 부끄럽죠.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돼요.

— <40명의 민초들이 써내려간 해방 전후 역사>, 2005년 8월 10일, 연합뉴스.

또한 “고등관, 즉 군수급 이상은 모두 친일파”로, “일제말기 군수는 공출, 정신대 차출 등을 맡은 일선 행정의 최고책임자였는데, 군수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뻔히 알고도 군수가 되기를 희망해 군수가 됐다면 이는 친일파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바 있다[각주:1]“일제 때 산 사람은 모두 친일파”‘척결’ 주장은 정치적 고려 있다? , 정운현, 2002년 5월 30일, 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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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크릴레 교수

마르틴 크릴레 교수

마르틴 크릴레(Martin Kriele, 1931년 1월 19일 ~ )는 독일의 법학자이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뮌스터 대학, 본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행정법학자이자 법철학자인 한스 율리우스 볼프(Hans Julius Wolff)와 헤겔 연구의 거장 요아힘 리터(Joachim Ritter)의 영향을 크게 받은 크릴레는, 뮌스터 대학에서 볼프의 조교로 있으면서 박사학위 논문 「정의의 기준」Kriterien der Gerechtigkeit 을 통해 법철학의 지배적 조류가 된 상대주의를 다루었다. 그는 구체적인 판결과 결정이 그때 그때마다 ‘더욱 기본적인 이익’의 관점에서 일반적인 원리와 그 결과의 형량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논증하고, 법관의 판결과 입법자의 결정은 어느정도까지 정의의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는가를 논하였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독일학술재단의 지원을 통해 미국 예일 대학 로스쿨에서 연구하고, 귀국해 1966년에 뮌스터 대학에서 교수자격을 취득했다.

1967년에 에른스트 폰 히펠(Ernst von Hippel) 교수의 후임으로 쾰른 대학 교수가 되었다. 1968년부터 루돌프 게르하르트(Rudolf Gerhardt)와 함께 독일의 유일한 법정책학 전문지 『법정책학지』Zeitschrift für Rechtspolitik 를 간행하고 있다. 1977년부터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재판소 재판관직을 맡고 있다.

『민주적 헌정 국가의 역사적 전개』Einführung in die Staatslehre (한국어판은 국순옥 역)는 그의 대표 저작으로 꼽는 책이다. 민주적 헌정 국가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국가(평화), 권력분립적 헌법 국가(자유), 민주주의(정의)의 세 단계로 나누어 그 법철학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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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리스트

프란츠 폰 리스트

프란츠 폰 리스트
(Franz von Liszt, 1851년 3월 2일 ~ 1919년 6월 21일)은 독일의 형법학자이다.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는 종형이다.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빈 대학 시절에는 루돌프 폰 예링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1875년에 그라츠 대학에서 「위증죄론」Meineid und falsches Zeugnis 으로 교수 자격을 취득한 뒤 예링의 추천으로 1879년에 기센 대학 교수가 되었다.

1882년에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옮긴 리스트는 그의 형법사상의 근간을 이룬 「형법에 있어서 목적사상」Der Zweckgedanken im Strafrecht 을 발표한다. 그는 형벌의 목적은 법익의 보호이며, 법익의 ‘보호는 법익의 침해를 수단으로 하는 것에 의해 정당화되며 이러한 형벌은 목적의 달성을 위해 가장 적으면서도 유효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정당한, 즉 올바른 형벌은 필요한 형벌”이고, “필요한 형벌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설파했다.

1889년에는 벨기에 브뤼셀 대학의 교수 아돌프 프린스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교수 반 하멜과 협력하여 국제형사학협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국제형사학협회는 여러 나라에 지부를 설치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회원이 1,500여 명을 헤아렸지만 이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규모가 축소되어 독일 및 오스트리아의 부회(部會)가 설치되었다가 나중에 독일형법협회가 설립되면서 해소되었다.

1889년에는 할레 대학으로 옮겼는데, 형법 이외에 국제법 강의도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학문적 연구를 가장 활발하게 펼친 리스트는, 1898년에 펼친 강연에서 발표한 「사회병리적 현상으로서의 범죄」Das Verbrechen als Sozialpathologische Erscheinung 를 통해 ‘범죄는 사회의 필연적인 현상이지만, 범죄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면 이는 하나의 병리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범죄의 원인으로는 경제적 상황, 노동자의 처지의 악화 등으로 ‘범죄의 사회적 원인이 개인적 원인보다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에 급격하게 확산되던 사회주의와 관련해서는, “현존 사회생활을 변혁하는 것에 의하여 범죄를 완전하게 세상에서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토피아의 세계에 속한다”고 지적하고, “노동계급의 모든 처지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냉정한, 그러나 목적의식적인 사회정책”이 “최선과 함께 가장 유효한 형사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비교적 급진적이었던 이러한 생각은 당시 구파의 강한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1899년에 베를린 대학으로 옮긴 리스트는 취임 강연 「형법학의 임무와 방법」Die Aufgaben und Methode der Strafrechtswissenschaft 에서 신파 형법학의 의미와 근거를 분명하게 하고, 형법학이 인과과학적 연구로서의 범죄학가 형벌학 및 형사정책학 연구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논증하였다. 이후 리스트는 형법과 국제법, 법철학 등을 강의하였다.

1917년에 66세가 된 리스트는 교수직을 떠나 형사학 연구소의 유지에 힘을 쏟고, 장서를 기증한 뒤 제하임에 은거했다. 이후 1919년에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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