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배수일, 향토사 자료를 활용한 국사 학습 지도 방안 연구 : 구미지역의 서원자료를 중심으로,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2003년 8월.
- 정영호, 구미 진평동 마애존불에 대하여, 學術論叢 제3호, 1979년.


환경 및 경제
- 이철우·도은주, 구미전자산업의 연계체계와 공간적 특성, 社會科學 제8호, 1996년.
- 정유진·김동인·박상진·정인희, 패션 브랜드 지점 조사를 통한 구미시 상권 구조 및 패션 동향 분석, 한국의류학회지 제29집 3/4호, 2005년.


지리


문화
- 김현숙, 구미시 소재 사찰을 통해 본 현대불교의 역할, 嶺南學 제7호,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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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1992)년에 동양제과(東洋製菓)에서 포도과즙의 젤리형 사탕을 출시하였으니, 이름하여 '마이구미'이다. 당시 자못 인기가 있어 월 20억 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마이구미 때문에 지명도를 올렸던 곳이 바로 '구미(龜尾)'인데, 구미는 경상도 대구부(大邱府)와 상주목(尙州牧) 사이에 있던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 일대의 지명으로서, 여러 차례 행정구역 변경을 거쳐 무오(1978)년에 구미읍이 선산군에서 분리되어 구미시(龜尾市)가 되었다. 이후 읍세(邑勢)를 확장하며 인근 지역을 점차 흡수하다 을해(1995)년 정월 초1일에는 선산군을 거꾸로 통폐합하여 도농복합시 형태의 구미시가 되었으니, 세간에서는 이를 이르러 '구미가 당겼다'라고 하였다.

이 구미에 영조척(營造尺:31.22cm)으로 해발 삼천이백구십사 척(尺:997m) 높이의 금오산(金烏山)이 있다. 청화산인(靑華山人) 이중환(李重煥:1690-1756) 선생께서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이르시기를,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嶺南)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善山)에 있다'고 하실 정도로 현재의 구미 금오산 주변에서 여러 위인들이 태어났으니, 호(號)를 야은(冶隱) 혹은 금오산인(金烏山人)이라 하던 충절공(忠節公) 길재(吉再:1353-1419) 선생도 그 중에 한 분이셨다. 그러나 충절공 야은 선생은 허다한 선산 출신의 인재 가운데 한 분이 아니다. 바로 충절공으로부터 수많은 인재가 비롯된 것이니,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충절공 야은 길재, 문강공(文康公) 강호산인(江湖山人) 김숙자(金叔滋:1389-1456)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도통(道統)을 헤아려 보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천어망(天漁通)을 확장한 조망궁(釣網宮) 어물전(漁物展)의 천어(天漁) 선생이 구미 지역사(地域事)를 정리하여 널리 알리는 일에 뜻을 두고는, 따로 거처를 마련하여 액호(額號)를 '금오산인'이라 한 후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하였다. 무릇 구미 지역에 인연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오산에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금오산에 연정을 둔 사람이라면 충절공 야은 선생을 숭모하지 않을 수 없으니, 거소(居所)의 이름을 금오산인이라 한 것이 어찌 심상한 일이겠는가. 내가 천어 선생의 웅대한 포부와 금오산인이라 작명한 연원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고, 또 정리(情理)로 보아 어렵게 청한 것을 끝까지 거절할 수 없기에 이렇듯 기문을 짓는다. 선산에서 나온 구미가 선산을 흡수하듯, 충절공 야은 선생으로부터 수많은 인재가 자라나듯, 처음 거처를 마련한 뜻을 잘 펼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정해(2007)년 11월 17일, 선성(宣城) 김하은(金河銀) 근서(謹書)

전일(前日)에 내가 김하은님께 기문을 청하였으므로, 선생께서 맛초아 붓을 열어 주시었으므로 내가 그 글을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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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교통

구미시 교통 네트워크 지도

구미시 교통 네트워크 지도

 경부선 철도가 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도심을 관통한다. 서울기점 276.7킬로미터 지점의 구미역과 281.3킬로미터 지점의 사곡역이 위치하고 있다. 2005년의 구미역 이용객 숫자는 약 485만 명으로, 하루 평균 1만 3천여 명이 이용했으며 사곡역은 연간 1만 1천여 명이 이용해 하루 평균 약 30명이 이용했다.[각주:1]

 경부고속철도가 시의 남서쪽 외곽을 지나가며, 2010년에는 김천시 남면에 김천구미역이 완공·개통할 예정이다. 그러나 경부고속철도 개통 이후 일반 열차 편성이 감소하고, 구미시에서도 KTX 정차 요구가 끊임없이 지속되었으므로, 한국철도공사는 2007년 6월 1일부터 하루 상·하행 각 2회씩 기존 경부선을 경유하는 KTX 열차를 김천역과 구미역에 정차하기로 결정하였다. 구미시는 이를 위해 한국철도공사 측에 운행 적자의 보전과 구미역 광고용 전광판의 설치, 도로 정비, 주차장 부지 제공 등 250억 원 가량의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운행 횟수가 너무 적은데다 운행 시간 또한 출·퇴근 시간대나 업무 시간대와 동떨어져 이용객에게 불편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각주:2]

 이 외에도 2005년에 당선된 남유진 구미 시장은 2011년까지 경부고속철도 김천구미역과 구미국가산업단지 사이를 연결하는 경전철을 건설한다는 공약을 제시하였으나, 5천억 원 이상의 건설비에 비하여 활용도나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될 뿐만 아니라 계획도 세워져있지 않아 실현 전망은 불투명하다.[각주:3]

도로 교통

 경부고속국도가 도심을 동서로 관통하며, 중부내륙고속국도가 구미를 기점으로 여주와 연결되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동측으로는 중앙고속국도가 통과한다. 경부고속국도 선상의 구미 나들목남구미 나들목, 중부내륙고속국도의 선산 나들목이 있다. 구미나들목은 연간 492만여 대의 차량이 이용하며, 남구미나들목은 433만 여대, 선산나들목은 71만여 대의 차량이 이용하고 있다.

 국도 제33호가 남북으로 관통해 선산읍과 고아읍을 연결하며, 남측으로 김천과 칠곡을 연결하는 국도 제4호가 국도 제33호와 연결된다. 북측으로는 국도 제25호국도 제7호와 연결되어 대구와 상주를 이으며 통과하고 있다. 또한 국도 제67호가 동측에서 남북으로 2공단과 3공단을 통과해 상주와 칠곡을 연결하고 있다.

 시외로의 대중교통은 구미종합터미널선산터미널의 2개 터미널과 고아·해평·도개·산동·장천의 5개 정류소가 분담하고 있으며, 구미종합터미널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시내버스는 일선교통구미버스가 공동으로 배차하고 있으며, 노선 협의 및 조정을 위해 공동관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노선은 2004년부터 노선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하여, 2005년 7월 10일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노선이다. 당초에는 지·간선 체계 도입 및 무료 환승 등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2004년말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서 종전의 버스 노선을 일부 개편하되 새로 조성된 대규모 주택 단지를 경유하거나 시·종점으로 하는 노선을 확충하고 노선 번호를 합리적으로 조정한 지금의 체계가 도입되었다.

 노선 개편 이전의 105개 노선은 87개로 조정되었다. 시가지·인동의 순환버스는 한 자리수의 번호를 부여하고, 시가지를 연결하는 노선은 10번대, 선산읍·고아읍·무을면·옥성면·도개면 등을 시·종점으로 삼는 노선은 20번대와 30번대를, 인동 지역을 시·종점으로 하는 노선은 40번대를, 금오공과대학교를 시·종점으로 하거나 김천시와 연결된 노선은 50번대를, 천평 및 동명 지역을 시·종점으로 하는 노선은 60번대를, 장천면을 시·종점으로 하는 노선은 70번대를, 해평면과 산동면을 시·종점으로 하는 노선은 80번대를 부여하였다. 좌석버스는 노선번호 앞에 1을 붙여 세 자리수의 번호를 부여하였다.
  1. 한국철도공사, 《철도통계연보》. [본문으로]
  2. <A h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8624&amp;yy=2007" target=_blank>KTX 구미·김천역 상·하행 2차례씩 정차</A>, 매일신문, 2007년 04월 30일자. [본문으로]
  3. <A href="http://www.kbmunhwa.com/pdf_list/2007/pdf/20070719_8.pdf" target=_blank>구미 경전철 건설 공염불되나</A>, 경북문화신보, 2007년 7월 19일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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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지리

 경상북도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남쪽에는 칠곡군, 서쪽에는 김천시, 북쪽에는 상주시, 동북쪽으로는 군위군과 의성군과 접하고 있다. 지세는 대개 서북방으로부터 동남을 향하여 경사를 이루며 시의 중앙을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관통한다. 서남단에는 해발 976미터의 금오산, 동쪽에는 사면석벽의 천생산, 동북쪽에는 청화산과 냉산 등이 위치하고 있다.

구미시 자연지리도

구미시 자연지리도

 지질적으로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서측으로 구분된다. 금오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화강암류와 화강암질 편마암류로 구성되어 있는 낙동강 서측은 오랜 침식으로 노년기적 구릉성 지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와 낮고 평탄한 구릉이 주를 이룬다. 금오산 일대는 주로 화산암류로 구성되어 급한 경사를 보이며, 기복의 차이가 심한 장년기적 산세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작은 하천은 대개 낙동강으로 직교하여 유입된다.[각주:1]

 금오산의 화산암류는 주로 경상분지 내에서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는데, 구미시뿐만 아니라 칠곡군, 김천시의 3개 시·군에 넓게 걸쳐있다. 이 지역은 다양한 암석이 분포하여, 과거에는 금이나 은, 몰리브덴 등을 채굴하였으나 현재는 채굴하는 곳이 없다.

인문지리

 주로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하여 구미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발전 및 확장되었다. 인접한 김천시와 칠곡군의 약목읍 지역과는 철도와 도로를 통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통근자 비율도 높다. 군위군이나 상주시와는 읍·면 지역과 연결되어 재래시장의 상권이나 통학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구미시 시가도

구미시 시가도

 동 지역의 시가지인 원평동 지역은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구미역의 전면으로 역전로가 동서로 이어져 있고, 경부고속도로의 전면으로 산업로가 동서를 잇고 있다. 양 도로 사이를 역전로가 잇고 있으며, 역전로의 동측에 번화가인 문화로가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1916년에 경부선의 구미역이 설치된 이래 시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한정된 면적으로 인해 중심지로서의 역할은 거의 상실하였고 문화와 상업의 중심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방사형 도로를 기반으로 하여 조성된 형곡동 및 송정동 지역은 1970년대 이후 대단위 주택단지와 시청, 우체국, 구 전화국, 교육청, 상공회의소 등의 업무지구가 조성되었다. 금오산을 측면에 끼고 있어 양호한 환경을 바탕으로 조성된 형곡동의 주택지구는 인접한 송정동의 업무지구와 연결되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이 지역의 주택 포화로 인해 1990년대를 전후로 하여 조성된 도량동과 1990년대 후반에 조성된 봉곡동의 주택지구는 등기소의 이전과 함께 새로운 주택지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구미 1공단의 조성을 시작으로 낙동강 서측에 형성된 공업지구는 이후 2·3·4공단의 조성과 함께 낙동강 동측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조선시대까지 선산군과 함께 구미 지역을 구성하고 있던 인동현 지역은, 현재 인동동을 중심으로 이른바 강동 지역을 구성하고 있다. 인동동은 1996년에 3공단 완공 이후 당시 2만 명이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해 현재는 인구 5만 명으로 구미 최대의 행정동이기도 하다.

 1995년 도농통합 당시 30만 명이던 구미시의 인구는 2006년 38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인접한 김천시 아포읍이나 칠곡군 석적읍·북삼읍도 함께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른바 ‘낮에는 구미시민, 밤에는 칠곡군민·김천시민’이 되는 통근·통학자도 상당한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각주:2]

 그러나 도농통합 이전까지 선산군 지역의 중심 지역이었던 지금의 선산읍 지역은 통합 당시 25,000여 명이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현재는 2만여 명선도 무너졌다. 또한 선산등기소가 구미등기소로 통합된 것을 비롯해 선산에 위치했던 기관이 동 지역 시가지로 이전하는 등 상권이 위축되면서 통합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1. 한국동력자원연구소, 〈구미도폭지질보고서〉, 1989년. [본문으로]
  2.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id=etc&amp;sid1=102&amp;mode=LPOD&amp;oid=086&amp;aid=0000044590" target=_blank>전국에서 제일 젊고 잘사는 도시는 경북 구미시 평균 31.4세</A>, 내일신문, 2006년 9월 13일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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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라는 지명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는다. 다만 지명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세히 밝혀져 있다.

 《고려사》 〈병지〉(兵志)에는 역참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상주도장(尙州道掌)의 25개 역의 하나로 ‘구며’(仇旀)가 등장한다. 이후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구며역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는 구며역과 함께 상구미(上龜尾)와 하구미(下龜尾)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조선 성종 연간에 구며역이 구미역(龜彌驛)으로 잠시 바뀌었다가, 다시 구미역으로 되었지만 조선 중기에 선산도호부의 남면(南面)을 둘로 분할하면서, 이름을 각각 상구미방(上龜尾坊)과 하구미방(下龜尾坊)이라고 하면서 지명이 구미로 바뀌었다.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1872년에 만들어진 지방지도의 선산읍성 일대 부분으로, 붉은 원 안에 구미역(九尾驛)이라고 적혀 있다.
 ‘며’(旀)라는 글자는 원래 이두 문자로, 미(彌)의 속자이다. ‘구며’라는 지명의 문자는 원래 뜻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음이 같고 뜻이 있는 글자인 ‘구미’(龜尾)로 바뀌었다고 사학자 이병도와 불교학자 이인재가 고증한 바 있다.[각주:1]

 또한 원삼국 시대에 형성된 진한의 소국으로 군미국(軍彌國)이 지금의 구미 일대, 변군미국(弁軍彌國)이 지금의 구미시 인동동 일대에 소재한 고분군의 주변으로 비정되고 있다. 따라서 군미국을 구미의 어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각주:2]

 구미 지역을 이루고 있는 선산과 인동은 조선 말까지 분리된 지역이었다. 선산의 경우 신라 진평왕 36년(614년)에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면서 ‘일선’이라는 이름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문왕 7년(687년)에 다시 일선주를 파하고 사벌주로 고쳤다가, 경덕왕 때 ‘숭선군’(崇善郡)으로 고쳤다.

 고려 시대에는 성종 14년(995년에 ‘선주’(善州)로 고쳤고, 조선 태종 때는 지금 남아있는 지명인 ‘선산’(善山)으로 고치게 되었다. 선산군은 다른 이름으로 ‘화의군’(和義郡)이라고도 하였다.

 인동은 신라 때에는 ‘사동화현’(斯同火縣)이라고 불렀는데, 이후에 ‘수동현’(壽同縣)으로 고쳤다가 경덕왕 때 지금의 ‘인동’(仁洞)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지역은 또한 ‘옥산’(玉山)이라고도 한다.[각주:3]
  1. 《구미시지》 보정판, 구미문화원. [본문으로]
  2. 배수일, 〈향토사 자료를 활용한 국사 학습 지도 방안 연구 : 구미지역의 서원자료를 중심으로〉,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2003년, 32쪽. [본문으로]
  3. 《구미시지》 보정판, 구미문화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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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절공 야은(冶隱) 선생은 여말(麗末)의 충신으로, 목은(牧隱:이색) 선생 및 포은(圃隱:정몽주) 선생과 더불어 이른바 삼은(三隱)의 한 분이시다. 앞의 대세를 살피시고, 엎드려 나라의 장래를 아셨으므로 적극적이지 않으나 소극적으로 낙향하시어 시대를 돌아보사 본향(本鄕:구미)의 으뜸가는 명사이시고 충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분이시다.

 야은 선생께서 채미(採薇:이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서 나온 말)하며 계실 때에 금오산인(金烏山人)이라 칭하셨으므로, 본향의 후인되는 소(小:나)가 감히 선생의 호를 빌어 쓰고자 한다. 금오산(金烏山)은 마땅히 지역의 으뜸가는 산이며, 상징같은 산이므로 빌어쓰는 때에 이르러 이만한 호칭이 없으리라 보인다.

 이 블로그를 개설하고자 한 것은 홈페이지로 꾸미어 다양한 지역 정보를 담아내고자 하였음이나, 내가 본시 옹졸하고 능력이 모자란지라 여의치 못하였으므로 다만 블로그를 개설하여 칼럼과 이제까지 모아둔 정보를 전하고자 하는 뜻이다.

 마땅히 세상을 살피는 것은 세인의 할 일이지만, 가깝게 지역을 살피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가 붓을 들어 그 첫 머리를 두고자 하는 마음이니, 이 뜻이 변하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은 거소에서 풍기는 향기는 천리를 가고, 만리를 가는 법이니 세상에 향내가 번지기를 빈다.


정해년(丁亥年:2007)  시월 초사흗날에 금오산인 천어가 받잡아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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