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 창설 및 우리나라의 종전·피폭 60주년을 맞아 한층 더 국제평화의 구축으로의 공헌을 서약하는 결의

国連創設および我が国の終戦・被爆60周年に当たり、さらなる国際平和の構築への貢献を誓約する決議


2005.8.2. 중의원


 국제평화의 실현은 세계 인류의 비원悲願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전쟁 등에 의한 참화가 끊이지 않는다.


 전쟁이나 테러리즘, 기아나 질병, 지구환경의 파괴 등에 의한 인명의 상실이 계속되고, 핵병기 등의 대량파괴병기의 확산도 걱정된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현실 속에서 본 원은 국제연합이 창설 이래 60년에 걸쳐 국제평화의 유지와 창조를 위하여 발휘한 예지叡智와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우리들은 이에 10년 전의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로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를 상기하며, 우리나라의 과거 한 때의 행위가 아시아를 시작으로 하는 다른 국민에게 준 다대한 고난을 깊이 반성하고, 새롭게 모든 희생자에게 추도의 성의를 바치는 바이다.


 정부는 일본국헌법에 나타나는 항구평화의 이념 하에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세계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고 핵병기 등의 폐절廃絶, 일체의 전쟁의 회피, 세계연방 실현으로의 길의 탐구 등 지속가능한 인류공생의 미래를 절실히 열어나가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이상, 결의한다.


헤이세이 17년(2005년) 8월 2일


 중의원은 2005년 7월 2일 오후의 본회의에서 전후 60년의 국회결의를 공산당을 제외한 자민, 공명, 민주, 사민 4당의 찬성으로 채택하였다.


 여당측에서 제시한 원안에 1995년의 전후 50년 결의에 명기된 ‘식민지 지배’나 ‘침략적 행위’라는 문언이 없는 것에 야당 측이 ‘내용이 후퇴했다.’고 반발, 조정을 거듭하였으나 공산당을 제외한 4당이 전후 50년의 국회결의의 내용을 상기한다는 표현을 추가하는 것에 의견이 일치하였다.


 자민당의 아베 신조 간사장대리나 납치의원연맹 회장인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을 결의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등 자민, 민주 양당의 10인 가까이가 표결 전에 본회의장을 퇴장, 공산당은 “전후 50주년 결의를 상기하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의 명확한 반성이 빠진 결의”라며 반대하였다.


60년 결의, 말을 넘어서 화해를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2005.8.3. 사설)


 이 10년 동안 무엇이 변화하였는가. 어제 중의원에서 채택된 '전후 60년'의 국회결의를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의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중의원 의장의 지시로 실현되었다. UN 창설이나 일본의 피폭으로부터 60주년을 맞아, "새롭게 국제평화의 구축에의 공헌"을 약속하였다. 정부에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핵병기의 폐절, 일체의 전쟁의 회피, 세계연방의 실현" 등에의 노력을 촉구하였다.


 10년 전, 이와 같은 전후 50년의 시점에 국회결의가 채택되었다. 이번 결의와는 다르게, 그 때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자민당, 사회당, 사키가케의 3당 연립 하에서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씨가 수상이었다.


 과거의 식민지 지배나 침략에의 반성과 사죄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회당에 대하여 자민당이 반발하였다. "일본만이 식민지 지배나 침략을 한 것만은 아니다.", "전과자로서 머리를 숙이는듯한 결의는 반대다."라는 비판이 날아들었다.


 결국, 식민지 지배 등의 표현은 들어갔고, 여당이던 자민당에서 본회의 결석자가 속출. 야당이던 신진당도 결석하여, 결의에 찬성한 사람은 중의원 의석의 과반수에도 이르지 못하는 이상사태가 일어났다.


 우리들은 사설에서 "부끄럽다. 슬프다. 버틸 수가 없다."고 썼다.


 그로부터 10년. 이번 결의에서는 "우리나라의 과거 한 때의 행위"가 아시아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주었다고 하며, 반성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침략적 행위", "식민지 지배"의 표현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전후 50년 결의나 그 후의 무라야마 담화에 분명히 외쳤던 그러한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반성은 아시아에 넓게 받아들여진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이 10년 동안에도 자민당의 정치가는 창씨개명이나 한국 병합을 정당화하려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 때마다 결의의 "반성"은 빛이 바랬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아시아 외교는 팔방색(八方ふさがり: 팔방이 다 막힌 상태)에 빠져있다. 중국에서의 격한 반일 시위 등을 둘러싸고 고이즈미 수상은 4월의 아시아·아프리카 수뇌회의에서 무라야마 담회의 표현을 따라 이해를 구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화해는 나아가지 않았다. 더욱이 사태는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결의에 '침략' 등의 표현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여 반생의 마음이 후퇴한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야당의 요구에서 "10년 전의 결의를 상기하며"라는 한 문장이 삽입되어, 전후 50년 결의를 답습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자민당이나 민주당에 퇴장, 결석한 의원이 있다지만, 찬동한 의원은 전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근린제국과의 사이가 좋아지지 않는 이런 시기인 만큼, 국회의 의사意思로서 새로이 반성을 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 취지가 조금이라도 반영되어 화해가 진전되도록 국회 자신이 노력할 책임이 있다.

[전후 60년 결의] 무엇을 위한 국회결의인가 (요미우리 신문読売新聞, 2005.8.3. 사설)


 역사의 무게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얄팍한 국회결의이다.


 국제평화로의 공헌을 서약하는 '전후 60년 결의'가 중의원 본회의에서 채택되었다.


 결의는 "우리나라의 과거 한 때의 행위가 아시아를 시작으로 하는 다른 국민에게 준 다대한 고난을 깊이 반성하고, 새롭게 모든 희생자에게 추도의 성의를 바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뒤에 "핵병기 등의 폐절, 일체의 전쟁의 회피, 세계연방 실현으로의 길의 탐구" 등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채택의 방침이 중의원 의원운영위원회의 이사회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결정된 것은 불과 1주일 전의 일이었다.


 고노 요헤이 중의원 의장의 강한 의향이 있었다고 전한다. 자민, 공명, 민주, 사민의 4당의 찬성 다수로 순조롭게 결정되었다. 공산당은 반대하였다. 자민, 민주 양당의 의원도 10인 가까이가 표결에 앞서 본회의장을 퇴장하였다.


 민주, 사민의 양당은 당초에 "식민지 지배나 침략적 행위" 등에 대하여 "깊은 반성의 뜻"을 표명한 전후 50년의 국회결의보다도 후퇴하고 있다면서, 난색을 표하였다. 그러나 "이에 10년 전의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로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를 상기하며"라는 문언을 더한 뒤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전후 50년 결의'는 자·사·사 연립정권의 무라야마 내각 시대에 당시 사회당이 주창하여 중의원에서 채택되었다. 문언을 둘러싸고 각 당 사이에 격론이 오갔다.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결의안 채택에는 여당에서도 약 70명이 결석하였다. 신진당 의원도 전원이 결석하고, 공산당은 출석하여 반대하였다. 찬성은 중의원 의원 총수의 과반수에도 미치지 않는, 참담한 '국회결의'였다.


 이번의 '전후 60년 결의'에는 "국제연합이 창설 이래 60년에 걸쳐 국제평화의 유지와 창조를 위하여 발휘한 예지叡智와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라는 부분도 있다. 어째서 전후 60년이 되어서 느닷없이 UN을 들고 나선 것인가.


 게다가 일본은 1956년 이래 50년에 걸쳐 UN을 구성하는 당사자이다. UN 예산의 약 20%를 부담하고,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가입을 바라보는 책임있는 중핵 멤버이기도 하다.


 마치 UN 밖에 있는 제3자처럼 UN에 "경의를 표한다."는 것은 여러 외국의 실소를 사지 않을까.


 "세계 연방 실현"이라지만, 어째서 전후 60년의 지금인가. 당돌한 인상을 받은 사람이 많지는 않을까.


 무엇을 위한 국회 결의인가. 그런 의문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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