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보았듯이 1기 터미널 시대의 핵심은 산개한 터미널과 당국의 집중화 시도였다. 그 집중화의 첫 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앞서 본 용두동 동마장터미널이 아니라 용산의 남부터미널이었다. 모두(冒頭)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용산 터미널의 위치에 대하여 오인식이 있는 것이 본 로작의 1차적 계기였지만, 그 위치가 너무나도 간단한 것이라 무어라 이야기할 방도가 없을 정도이다.
경향신문 1967년 12월 11일자 | 동아일보 1968년 8월 12일자 |
경향신문 1969년 7월 1일자
위의 1967년 기사는 서울시가 발표한 1968년도 특수시책사업계획의 일부이다. 시외버스종합터미널을 설치하여 도심의 터미널을 옮긴다는 것이 핵심이고, 그 위치가 바로 용산이다. 이듬해 8월 12일에는 역사적인 남부 "종합" 터미널을 기공하게 되는데, 그것이 1968년의 기사이다. 이 터미널은 1969년 8월 15일에 준공예정이라고 하였으나, 기록상으로는 아마 6월쯤 완공이 된 것으로 보이고, 7월 1일자부터 서울역앞 시외버스 터미널이 용산으로 이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바로 1969년 기사의 내용이다.
저기에서 도동입구의 위치를 찾아볼까 하였는데, 이 도동이 동자동과 후암동이니 뭐시기니로 갈라지고 와리가리한 탓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제보바란다. 아무래도 후일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자리가 아닌가 하는데, 지번이 명확하게 같지 않아 자세히 모르겠다. 하여간 이 시외버스터미널은 용산 남부터미널로 넘어가 후일 서초 터미널(서초동 남부터미널의 현 명칭)이 되는 것이다.
좌측은 1972년도 사진이고, 우측은 1974년도 사진이다. 지금의 LG유플러스 본사 사옥 옆자리쯤 될 것이다. 용산공업고등학교 건너편으로 막 지어지기 시작한 아파트들이 보인다.
용산은 위치가 너무나도 명확하여 길게 할 이야기가 없으므로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