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계속 살펴본 것처럼 1기 터미널의 대부분은 서울 시가지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위치는 매일경제신문의 1970년 6월 27일자 기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해당 기사는 "달리는 궁전(?)을 방불케한 딜럭스고속버스가 훤히트인 하이웨이위를 질주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고속버스회사들의 터미널가운데 한두곳은 비교적넓은 대지를 확보, 그런대로의 시설을 갖추어 고속버스터미널의 면목을 세우고있지만 여타회사의 터미널은 대부분이 협소한자리에 불비한시설로 체면치레를 하고있는 실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8개 터미널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현재 서울도심지에 자리잡고있는 고속터미널은 ▲종로구 공평동에 자리잡고있는 동양고속(3백여평)을 비롯하여 ▲종로2가의 삼화고속(2백평) ▲서울역전의 한진, 풍전고속(6백60여평) ▲중구 저동의 유신고속(1천3백80여평) ▲용산구 후암동입구의 「그레이·하운드」(2백여평) ▲중구 양동의 광주고속(3백평) ▲중구 을지로3가의 속리산관광(2백50여평) ▲을지로6가의 한일, 천일, 한남의 공동터미널(4백여평) 등 모두 8개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1972년 2월 29일자 경향신문 기사에서는 "9개 고속버스 터미날 이전에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市가 도심지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터미널을 영동지구와 영등포구 양평·당산동으로 옮기도록 한 방침이 불편을 준다는 큰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9개 터미널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


 ▲한진제1터미널(중구 봉래동1가 13의4) ▲한진제2터미널 (봉래동1가 132의5) ▲삼화고속(종로구 관철동 6의1) ▲벤츠고속제1터미널(중구 을지로6가 18의21) ▲벤츠고속제2터미널(동대문구 창신동 440) ▲동양고속(종로구 공평동 115의12) ▲유신고속(중구 초동 107의 1) ▲속리산고속(중구 을지로3가 141) ▲그레이하운드(중구 도동1가 2의12)


 위와 아래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터미널은 동양고속(공평동), 삼화고속(종로2가 또는 관철동), 벤츠고속제1터미널(을지로6가, 한일천일한남 공동), 한진고속터미널(서울역전), 유신고속(초동 또는 저동), 그레이하운드(후암동입구 또는 도동1가), 속리산고속(을지로3가)의 7개소이고 엇갈리는 것이 광주고속(양동)과 한진제2터미널(봉래동1가)과 벤츠고속제2터미널(창신동)이다. 이 외에 1972년에 개업한 동부고속의 터미널도 따로 있었다고하니, 이를 비정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우선은 간편한 것부터 살펴보면 한진고속터미널은 지금의 서울역앞 한진렌터카 사옥 뒷편이다. 1972년도 항공사진을 살펴보면 버스가 늘어서 있는 한진제1터미널(서울역제1터미널)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 터는 당시 세브란스병원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한 뒤 공지로 남아있다가, 1972년 9월쯤에 동양고속터미널이 들어서게 되면서 통합터미널로 조성된다. 동양고속 터미널은 이전 전에는 공평동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자리는 지금의 종각역 부근인 SC제일은행 자리이다. 당시 동양고속 앞에는 화신백화점과 함께 신신아케이드(또는 신신백화점)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위치를 찾기가 수월한 것은 무론이다.


 이 동양고속 터미널은 곧 1972년 9월에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터로 옮기게 되는데,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앞서 수 차례 거론한 당국의 터미널 이전 정책에 따른 것이다. 당초에는 동양, 삼화, 유신, 속리산, 그레이하운드 등이 들어간다고 계획되었으나 실제로 실현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72년 5월 12일자 동아일보1972년 9월 7일자 동아일보1972년 12월 19일자 매일경제

 동양고속의 버스는 서울역앞 터미널에서 출발하기는 하였으나, 위 항공사진에서 보듯이 터미널 자체가 완공된 것은 아니었다. 터미널은 이후 1972년 12월 19일에 완공되었는데, 기사를 보면 무려 런던 공항의 BOAC 터미널을 축소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동양고속은 이른바 "터미널 빌딩"의 위용을 자랑하면서도 새로운 터미널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손님 위주로 설계되었다는 동양고속 터미널은 확실히 당시의 자랑이었던 것임에는 틀림없다.



 서울역 앞에는 또한 코리아나관광진흥과 미 그레이하운드社가 50:50으로 합작한 코리아그레이하운드 터미널이 있었다. 버스에 그려진 개 그림 덕에 그레이하운드 대신에 개그린 버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레이하운드 터미널 위치가 바로 서울역 앞 후암동 입구였다. 동양고속 터미널로 통합될 계획에도 불구하고 이후 계속 영업을 지속하였다.



 좌측은 1972년의 도동(당시 저 위치는 도동1가였다.)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의 모습이다. 우측은 1974년의 서울역 앞 봉래동 터미널의 모습이다.



 사진은 위로부터 1970년, 1972년, 1973년의 그레이하운드의 광고이다. 현재는 찾아보기 힘든 화장실을 갖춘 고속버스라든지, 서울-부산 논스톱 버스라든지, 대형화물을 실을 수 있는 특이한 구조의 버스는 신선함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레이하운드는 1978년 철수하고 중앙고속에 인수된다.


 이 3개 터미널은 훗날 반포동 터미널이 개업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삼화고속(삼화교통)은 종로2가 터미널이 폐쇄되면서 한진고속 터미널을 사용하다가 다시 동양고속 터미널을 80년대 후반까지 사용하게 된다. 그 위치에 다시 연세 세브란스 빌딩이 세워지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그리고 한진고속 터미널은 대한항공 시내터미널로 잠간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잘 알 수는 없다.




 다음에는 다른 터미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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